미국·이란 충돌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한국을 ‘역외 석유 비축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한 협의에 잇따라 나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지정학적·물류적 위상이 새롭게 부각되는 양상이다.
정부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들이 한국 석유 비축기지 활용에 관심을 보이며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 외부에 선제적으로 저장할 경우, 해협 봉쇄 등 돌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출 차질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단일 병목에 의존하는 구조적 위험을 분산하려는 움직임”이라며 “특히 동북아 지역 비축기지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5%가 통과하는 핵심 통로로, 봉쇄 장기화 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이 같은 흐름은 국제공동비축사업 확대와도 맞물린다. 해당 사업은 해외 산유국의 원유를 국내 비축시설에 보관해 주고 임대 수익을 확보하는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우선 구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이미 UAE 아부다비 국영석유사(ADNOC)가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추가 산유국들의 참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수요 증가에 대응해 비축 역량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약 104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를 추가 확보하기 위해 1,554억 원을 투입하고, 비축기지 유지보수 및 시설 확충에도 3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단순 임대 사업을 넘어 실질적인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수급 상황과 관련해서는 단기적 불안 요인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에틸렌 등 석유화학 원료에 대해 긴급 수급 조정에 나섰으며, 보건·핵심 산업 분야 소재 역시 공급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다. 비축유 방출 시점은 6월 초 이전으로 설정하고, 시장 상황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에너지 물류 질서 재편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노드스트림 가스관 폭파, 홍해 항로 공격, 호르무즈 봉쇄 등 주요 해상 물류 거점이 잇따라 위협받으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다중 리스크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어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동시에, 이를 역으로 활용한 ‘비축 허브’ 전략의 기회도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연구원 역시 “중동 지역에 집중된 해상 물류 병목 구조를 고려할 때, 공급망 다변화와 저장 거점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중동 산유국들의 ‘한국 러브콜’은 단기적 위기 대응을 넘어 에너지 안보 전략의 축 이동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한국이 동북아 에너지 비축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국내 수급 안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