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이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세모(歲暮)가 주는 보편적 정서일 것이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가 있지만,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는 다짐과 희망도 함께 담고 있다.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시간의 속절없음을 깨달으며 자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 진실을 놓치지 않았는지 살펴보며, 자만과 허세를 멀리하고 겸손만이 지속하는 만족을 누린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큰 재능도 때를 만나야 하니 하늘이 문을 열어줘야 길이 보인다는 인내의 가치를 깨닫고, 행복은 자족하는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받음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일이다.
삶의 도리와 앞날 지혜 밝혀주는 세월의 흐름
특히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배려하는 겸손은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하고 세상을 빛나게 한다. 기고만장한 자만을 버리고 나를 낮추는 하심(下心), 곧 겸손의 미덕을 본보여야 한다. 우주 만상과 자연현상을 통해 삶의 도리와 앞날의 지혜를 밝혀주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겸손이야말로 처세의 필수 덕목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천지는 쉼 없이 움직인다. ‘논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변함없이 운행하고, 만물은 여전히 낳고 자라니,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말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기에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끝이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격동의 2025년도 저물어 간다. 누군가는 황혼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한다”는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내면으로 젖어 드는 숭고한 아픔과 회한으로 얼룩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나이 먹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거울 보고 늙음이 기뻐서(覽鏡喜老)’라는 시에서 그는 “늙지 않았다면 요절했을 것이고/ 요절하지 않았다면 노쇠해 마땅한 법/ 노쇠는 요절보다 나은 것/ 그 이치 의심할 나위 없네.”라고 말했던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근래 크고 작은 송년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묵은해를 정리하는 자리다. 하지만, 사실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음을 확인하려고 몸부림치는 자리라고 하겠다. 늘 쫓기듯 총총걸음으로 살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허전하다.
스마트 폰 한 대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것처럼 첨단 문명의 이기(利器)를 마음껏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군중 속의 고독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여느 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문명의 혜택이 크고 다양하지만, 가슴 속엔 언제나 허전한 강물이 흐르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사람들의 뒷모습에 드리워진 그늘은 길고 짙다.
그 이유와 해답은 무엇일까. 물질은 유한하고 욕망은 무한하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과 물질을 비교해 소외감에 허우적거리는 일상의 연속을 단절해야 한다. 무의식중에 길들여진 속도와 성취욕에서 잠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는 여유를 가지는 데서 작지만 뜻깊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대자유’를 구가할 수 있으리라.
이웃과 세상을 위해 베풀고 남겨야
근래 송년회가 이어지고 있다. 경계할 사항은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飮酒不及亂)고 했잖은가. 민폐를 끼치고, 인상이 흐려질 수 있다. 공자가 “몸가짐이 흐트러질 정도까지 마시지는 않았다.(唯酒無量不及亂)”라고 했듯 절제했음을 할 수 있다.
아쉬움이 가슴을 쓰리게 하는 세모다.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생각나서도 그러겠지만, 한 해가 가고 나이 들어간다는 회한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우주의 긴 시간에 비춰 볼 때 일 년은 찰나에 불과하고, 세상은 예전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무엇인가 이웃을 위해 베풀고 남겨야 한다. 빈부와 귀천을 따지지 말고!
주나라 건국의 기틀을 잡은 ‘태공망’도 “자기의 지위가 높다 하여 상대를 천시하지 말고 자기가 많이 지녔다 하여 상대의 적음을 멸시하지 말며 용맹을 간직했다 하여 적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勿以貴己而賤人 勿以自大而蔑小 勿以持勇而輕敵)”고 했다. 겸손하라는 가르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