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석 칼럼] 사라진 바늘 소리, 남겨진 옷의 가치
한때 한국의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소리가 있었다. 재봉틀이 돌아가는 경쾌한 리듬, 천을 재단하는 가위의 날카로운 숨결, 그리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던 손끝의 온기. 1980년대의 한국은 ‘의류 봉제 강국’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봉제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옷들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자 기술의 집약체였다. 그러나 시간은 방향을 바꾸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임금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더 낮은 비용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공장은 하나둘씩 이전되었고, 결국 한국의 봉제 산업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남겨진 것은 텅 빈 공장과 더 들리지 않는 바늘 소리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산업 이동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품질’과 ‘정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이동도 함께 이루어졌다. 과거의 옷은 오래 입을 수 있었다. 실밥 하나, 단추 하나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었고, 세련미가 있었고 또한 입을수록 몸에 익어가는 편안함이 있었다. 옷은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존재에 가까웠다. 반면 요즘의 옷은 빠르게 만들어지고
- 서인석 논설위원
- 2026-03-31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