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둘러봐도 인물이 없다. 혹여나 싶어 황새처럼 목을 쭉 빼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릴 뿐 신통한 도시 발전해법을 찾을 길은 요원하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어제 곁으로 가 버렸다. 얄팍한 권모술수가 좁은 공간에서 나자빠지고 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될 리 만무하고 걸레를 아무리 빨아봐야 걸레지 행주는 되기 어렵지 않은가.
흔적도 없다가 선거 바람이 불면 잊혀질세라 나타나는 뻐꾸기 아저씨의 슬픈 사연도 들리고, 밥상 위에 김치 조각처럼 총선, 지방 선거 때가 오면 어김없이 옮겨야 한다며 떠들어 대는 풍운아들의 외침이 한산한 도심의 적막을 깨트린다. 시외버스터미널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KTX 여파로 노선도 줄고 승객도 줄었는데 뭐를 옮기자는 것인지 ‘자다가 시숙다리 긁는 소리 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빈정거린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사계는 변함이 없는데 이 동네는 변하지도 않는다. 변함이 있으라고 고사를 지내야 하거늘 떡값을 홀랑 가져가 버렸으니 맨손으로 빌 수밖에, 영혼도 없고 신의도 없다. 울타리 밖에 서 망보고 있는 도둑놈이나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자루에 주워 담는 놈이나 모두 똑같은 도둑놈 아닌가, 흰 자루에 담으나 검은 자루에 담으나 모두 장물인데 흰 자루에 담았다고 복 전함에 가는 것 아닐 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데, 요즘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여우가 가져간다.’로 바뀐 것 같다. 맹꽁이 한 마리가 분탕을 치는 바람에 산 아래 동네가 쑥밭이 돼버렸다. 폴짝폴짝 뛰면서 잘도 놀더니만 그 맹꽁이도 이제 홍수에 떠내려갔는지 요즘은 잘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만 들린다. 대신 두꺼비가 도랑물을 휘젓고 있으며, 위법 건축물로 함정을 파고 있으나 애꿎은 철밥통만 두들겨 맞는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 수야/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의 시조다. 선조·효종 때 사람이고 인조 때에 예조·이조 판서를 지냈으며 병자호란 당시 예조 판서로 있으면서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하다가 척화신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친을 배척하는 신하) 으로 몰려 청나라로 잡혀가는 중에 이 시조를 읊었다.
시민을 사랑하는 인물은 보이지 않고 시민을 밟고 음해하려는 자들만 몰려오고 있다. 시민 대표가 되려는 자는 열린 가슴으로 시민을 포용해야 하거늘 시민을 기만하고 얄팍한 웅변술로 여론을 이용해 보려는 기회주의자는 시민들이 과감하게 배척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쪽으로 말려들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아! 여기가 ‘도원경(桃源境)’ 이란 말인가. 라는 신선함이 도래돼야 하는데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쿼바디스(quo vadis)? 어디로 가시나이까? 시민 여러분! 현재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지난 4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우리 주변에 간신은 없는지, 공무집행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머저리를 단체장으로 뽑지는 않았는지, 시민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텅 빈 상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골몰해질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냉정해지세요. 시민 여러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인정에 끌리지 마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지난날 남쪽에서 출마한 한 지방 후보의 웅변이다.
정의를 외치는 젊음은 사라지고 간신으로 둔갑해 불의와 싸워야 할 젊은 지방 정치인이 얄궂은 지방 권력 앞에서 애완견으로 변신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저런 인간이 시의원 이란말인가, 토가 나올뻔했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돈이 인생의 전부라 해도 비굴하게 살지 말라, 당신들에겐 젊음이 있고 어디를 가도 노동의 대가는 보장된다. 즉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시민 대표로 선출된 시의원이 꼬리를 흔들며 그렇게 살랑거리나.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지방이 건전해야 나라가 건전해진다. 정의롭게 살아야 할 지방기초 의원의 눈은 썩은 동태눈으로 변했으며, 어물전을 찾는 고양이로 변모해 이익만 추구하면 그 지역은 이미 썩은 것이다. 봄바람이 분다. 연분홍 꽃잎이 손짓하는 봄이 왔다. 우리가 가야 하고, 우리가 서야 할 곳이 어딘가,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이번 기회를 잃으면 이제 지방은 오래도록 경제 회복은 어려울 것입니다.”라며 웅변하던 한 지인의 모습이 몹시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