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한 자리가 200일 넘게 비어 있는 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후임 후보 재제청 요청을 거부했다. 발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위해 출국한 다음 날 나왔다. 청와대는 재제청 거부뿐 아니라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전날 직접 만났다는 점을 들어 발표 시점에도 반발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청와대가 보낸 문서에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야 할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며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가 지난 8월 2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고 요청한 지 25일 만이다. 조 대법원장은 당시 발표에서 공석을 메울 별도의 후속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발표 시점은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이 대통령과 만났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해외 순방을 떠났고, 조 대법원장은 이튿날 재제청 거부를 공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현안을 논의할 수 있었다며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뒤 입장을 발표한 것을 비판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출국 시점을 의도해 발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인선은 올해 초부터 막혀 있었다.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을 추천했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은 최종 후보에 뜻을 모으지 못했다. 조 대법원장은 8월 18일 손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청와대는 실질적인 협의 없이 이뤄진 제청이라며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두 기관은 같은 인선 절차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요청 문서만으로는 이미 행사한 제청권을 다시 행사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반면 청와대는 대통령에게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권한이 있으며, 그 뜻을 공문에 밝혔으므로 대법원장이 새 후보자를 제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언급한 문서 절차에도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청와대의 대응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그러나 정당 간 공방과 별개로, 노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퇴임한 뒤 후임 자리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청와대는 23일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손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진행할지, 새 후보자를 제청할지 양측이 해법을 찾지 못하면 대법관 공석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