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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감사 결과엔 침묵, 무대 위에선 ‘청렴’

 

충북도 종합감사에서 행정 전반의 민낯이 드러난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제천시는 지난 14일 공직자 300여 명을 제천예술의전당으로 불러 ‘청렴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무대에는 ‘청렴 LIVE Talk Box’라는 화려한 조명이 켜졌고, 시장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그 무대에 정작 있어야 할 말은 없었다. 수사서류를 잃어버린 일,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나도록 방치한 일, 채용과 세금·안전·재산관리 등 행정 전반에서 무더기로 지적받은 일에 대해 시민에게 공개적으로 고개 숙이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바로잡겠다는 설명보다 ‘청렴’을 주제로 한 공연과 대화가 먼저였다.

 

충북도가 공개한 2026년 제천시 종합감사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본처분 72건과 현지처분 4건 등 모두 76건이 지적됐고, 재정상 조치 대상액은 16억900만 원에 달했다. 공무원 1명에 대한 경징계와 4명에 대한 훈계도 요구됐다.

 

특히, 무단방치자동차 사건을 처리하면서 개인정보가 담긴 수사서류 5건을 분실했고, 사건 4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 기회마저 사라졌다. 승강기 안전관리와 채용, 세금 신고, 계약, 환경, 공유재산 관리 등 시민의 생활과 세금에 직결된 업무에서도 허점이 확인됐다.

 

이 정도 감사 결과가 나왔다면 제천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시민에게 사실을 설명하고 사과하는 일이다. 책임자를 문책하고, 지적사항별 개선계획과 이행 시한을 공개하며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손보는 일이다. 청렴을 말하기 전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제천시는 감사 결과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나 종합적인 후속대책을 시민 앞에 내놓기보다 청렴 콘서트 소식부터 알렸다. 행정의 실수로 시민의 권리와 세금이 훼손됐다는 감사 결과에는 침묵하면서 공무원끼리 공연장에 모여 청렴을 이야기했으니,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이 고울 리 없다.

 

물론 청렴교육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공직자에게 청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교육은 필요하다. 딱딱한 강의에서 벗어나 공연과 대화를 결합한 방식도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시점과 태도다.

 

집에 불이 났는데 소화기 사용법을 주제로 토크쇼부터 연 꼴이다. 환자를 수술대에 눕혀 놓고 병원 서비스 친절교육을 벌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제천시에 필요한 것은 청렴이라는 단어를 무대 위에 밝히는 일이 아니라, 감사에서 지적된 76건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하나씩 책임 소재와 개선책을 밝히는 일이었다.

 

청렴은 콘서트의 제목이 아니다. 무대 장식도 아니고, 시장과 공무원이 마이크를 잡고 몇 마디 주고받는다고 생기는 조직문화도 아니다. 잘못된 행정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는 것, 시민에게 사과할 일이 생기면 변명보다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 책임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청렴이다.

 

제천시는 이번 감사 지적이 일부 담당자의 단순한 업무착오였다고 선을 긋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사서류 분실과 공소시효 경과, 반복된 안전관리 부실, 불투명한 채용절차가 동시에 드러났다면 개인의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관리·감독 체계와 조직문화 전반을 살펴야 할 문제다.

 

더욱이 제천시는 2022년 감사에서 지적받은 승강기 관련 문제까지 다시 지적받았다. 감사가 끝날 때마다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답변만 제출하고 시간이 지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감사 지적을 공문으로만 처리했다면 청렴교육을 몇 번 더 한다고 조직이 달라질 리 없다.

 

시민이 궁금한 것은 간단하다. 76건 가운데 조치를 완료한 것은 몇 건인가. 16억900만 원의 재정상 조치 대상액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것인가. 분실된 수사서류에는 누구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고 당사자들에게 알렸는가. 공소시효가 지나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 사건은 누가, 왜 방치했는가. 재발 방지책은 무엇이며 시장과 간부 공무원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청렴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시민이 요구하는 것은 청렴 구호가 아니라 행정의 책임이다. 콘서트장에서 공직자끼리 청렴에 공감했다고 해서 감사 결과로 드러난 행정의 허점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무대 조명이 꺼지면 남는 것은 사진 몇 장과 보도자료 한 장일 수 있다. 그러나 분실된 수사서류와 놓쳐버린 공소시효, 잘못 집행되거나 관리된 시민의 세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청렴을 공연으로 보여주려 하지 말고 행정으로 증명해야 한다.

 

제천시가 진정 청렴을 말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시민 앞에 서야 한다. 감사 결과를 항목별로 공개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고, 개선 일정까지 밝혀야 한다. 그것이 콘서트 백 번보다 설득력 있는 청렴교육이다.

 

청렴은 박수받는 무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박수받지 못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지금 제천시에 필요한 것은 ‘청렴 토크’가 아니라 시민을 향한 사과와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