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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칼럼] 제천시, 전직 국장의 두 번째 명함, 왜 하필 시 지원단체인가

 

선거가 끝나면 대개 남는 것이 있다. 낙선한 후보에게는 빚이 남고, 당선한 후보에게는 빚진 사람이 남는다. 거리의 현수막은 철거되고 선거사무실은 문을 닫지만, 함께 뛰었던 사람들의 이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가 앞장섰고 누가 옆을 지켰으며 누가 박수를 쳤는지는 정치의 장부 어딘가에 또박또박 적힌다.

 

제천에서는 그 장부가 제법 오래 보관되는 모양이다. 제천시 국장 출신 전직 공무원이 직전 제천시장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뒤, 현재 제천시의 지원을 받는 단체에 취업했다. 공직에서 퇴직하고 선거캠프로 갔다가 다시 시와 가까운 단체로 이동했으니 경력의 동선만 놓고 보면 환승이 참 매끄럽다.

 

버스를 갈아타도 이 정도로 시간이 잘 맞기는 어렵다. 공직에서 내리자 선거캠프행 차량이 기다렸고, 선거가 끝나자 시 지원단체행 차량이 도착한 모양새다. 교통카드를 찍었는지, 누가 환승 안내를 해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시민 눈에는 우연치고는 노선이 꽤 절묘해 보인다.

 

물론 퇴직 공무원도 먹고살아야 한다. 평생 공직에 있었다고 퇴직한 뒤 집에서 화초에 물만 주라는 법은 없다. 오랜 행정 경험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일이라면 오히려 환영할 만하다.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취업문을 잠가버릴 수도 없다. 정치적 선택과 직업 선택은 누구에게나 보장된 권리다.

 

그런데 하필이면 시장 선거캠프이고, 하필이면 시의 지원을 받는 단체이며, 하필이면 그 자리에 전직 국장 출신이 들어갔다. ‘하필이면’이 한 번이면 우연일 수 있다. 두 번 겹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세 번 이어지면 시민은 돋보기를 찾는다. 세상에는 우연도 많지만, 정치권 주변에는 유난히 자리를 잘 찾아가는 우연이 많다.

 

전직 국장이라면 행정을 잘 알 것이다. 예산이 어디에서 오고, 어느 부서가 어떤 단체를 관리하며, 공문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재되는지도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단체로서는 이런 인재를 모셔오는 것이 복권 당첨처럼 반가울 수도 있다. 전화번호를 찾느라 시청 홈페이지를 뒤질 필요도 없고, 담당 부서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도 금세 알아들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행정을 잘 안다는 것이 곧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하다는 뜻은 아니다. 시청 복도를 오래 걸었다고 시민사회의 길까지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 조직을 관리한 경험과 민간단체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능력도 같지 않다. 행정의 문법에 익숙한 사람이 단체에 들어가면 업무는 편해질 수 있지만, 행정을 향해 쓴소리할 입은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다.

 

이쯤에서 시민은 시험문제보다 쉬운 질문 몇 개를 내놓는다. 채용공고는 했는가. 몇 명이 지원했는가. 면접은 누가 봤는가. 채용기준은 무엇이었는가. 해당 인물보다 경력과 자격이 나은 지원자는 없었는가. 그리고 시장이나 캠프 관계자, 제천시 공무원은 정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가.

 

답안도 어렵지 않다. 채용공고, 지원자 현황, 심사표, 회의록만 내놓으면 된다. 정상적으로 채용했다면 서류 몇 장이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자료 대신 “절차상 문제없다”는 말만 나온다면 시민은 다시 묻게 된다. 문제없다는 절차는 있는데 보여줄 절차는 없는 것인가.

 

지역에서 ‘관변단체’라는 말은 괜히 생기지 않았다. 법률에 적힌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시민은 안다. 간판은 민간인데 전기료와 사업비는 행정이 내주고, 단체의 입은 시민보다 시장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곳을 두고 하는 말이다. 행정이 기침하면 감기약을 챙기고, 행정이 박수를 치면 손바닥이 먼저 움직이는 단체라면 명칭만 민간이지 사실상 행정의 별관이나 다름없다.

 

그런 단체에 시장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전직 고위공무원이 취업했다면 시민이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단체가 좋은 인재를 찾아낸 것인지, 정치가 적당한 의자를 찾아준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자를 차지한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의자의 다리에는 행정 경험, 선거캠프 경력, 시 보조금, 정치적 인연이라는 네 개의 이름이 붙어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월급 봉투의 출처다. 급여가 단체 자체 수익에서 나오는지, 제천시가 지원한 보조금이나 위탁사업비에서 나오는지 밝혀야 한다. 시민 세금이 들어간다면 그 순간부터 사적인 채용이라는 방패는 얇아진다. 세금은 사람을 가려가며 걷지 않는데, 세금으로 만든 자리가 특정한 관계를 따라 배분된다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선거를 도운 대가로 자리를 줬다고 지금 단정할 수는 없다. 시장이 채용을 지시했다는 증거도 확인되지 않았다면 사실처럼 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일수록 당사자와 단체, 제천시가 먼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캠프 활동과 취업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더 간단하다. 그 자리는 언제 생겼고, 누가 채용을 결정했으며, 어떤 경쟁을 거쳤는지 밝히면 된다. 공개채용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점수표를 보여주면 되고,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했다면 그 전문성이 무엇인지 설명하면 된다. 실력으로 들어간 사람이라면 투명한 공개가 명예를 지켜준다.

 

문제는 지역의 자리가 자꾸 익숙한 얼굴을 찾아간다는 데 있다. 제천에는 능력 있는 시민이 그렇게도 없는가. 문화와 복지, 체육과 관광, 시민사회와 각종 재단을 이끌 인재를 찾다 보면 왜 늘 전직 공무원이나 정치권 주변 인사 앞에서 검색이 멈추는가. 제천의 인재 검색창에는 ‘전직 국장’과 ‘캠프 경력’이라는 자동완성 기능이라도 달려 있는 것인가.

 

새로운 인재를 찾겠다고 공모를 시작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는 경우가 반복된다. 시민은 공개모집이라고 읽었는데 결과를 보면 재회모임에 가깝다. 공고문은 전국을 향해 열려 있었지만 의자의 방향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향해 돌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퇴직 공무원의 경력은 지역의 자산이다. 그러나 그 자산이 몇몇 사람의 재취업 통장으로만 입금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 경험을 활용하려면 공개된 자리에서 경쟁시키고 성과로 평가하면 된다. 전직 국장이라는 명함이 출입증이 되고 선거캠프 경력이 추천서가 되는 순간, 행정 경험은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특권의 이자가 된다.

 

선거캠프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감사할 수는 있다. 밥을 살 수도 있고 술잔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 세금이 들어가는 자리를 감사패처럼 건넸다는 의심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선거운동은 후보자를 위한 자원봉사이지 당선 이후 자리를 받기 위한 적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천시는 민간단체의 인사라며 한발 물러날 일이 아니다. 돈을 지원하면서 사람은 모른다고 하면 곤란하다. 시민의 세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감독할 권한은 챙기면서, 누구의 급여가 됐는지는 민간의 영역이라고 선을 긋는다면 편리한 민관 분업이다. 돈을 줄 때는 공공이고 책임을 물으면 민간이 되는 마술을 시민은 더 이상 신기해하지 않는다.

 

해당 단체도 억울하다면 입을 열어야 한다. 왜 그 사람이 필요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채용했는지, 무슨 일을 맡겼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밝히면 된다. 침묵한다고 논란이 늙어 자연사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 의혹은 대개 자료를 먹고 사라지지만, 침묵을 먹으면 더 크게 자란다.

 

한 사람의 재취업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제천의 공적인 자리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묻자는 것이다. 퇴직한 고위공무원이 선거캠프를 거쳐 시 지원단체에 안착하는 길이 능력에 따른 정상적인 진로인지, 정치적 관계가 만든 특별노선인지 확인하자는 것이다.

 

회전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문이다. 특정한 사람들만 들어가고 시민은 밖에서 구경해야 한다면 그것은 문이 아니라 그들만의 통로다. 퇴직자의 새 출발을 축하하기 전에 그 출발선이 시민의 세금으로 그어진 것은 아닌지 먼저 살펴야 한다.

 

선거는 이미 끝났다. 캠프 간판도 내려갔다. 그런데 사람은 자리를 옮겨 다시 나타났다. 시민이 주문한 것은 공정한 채용과 독립적인 단체였는데, 식탁에는 또 익숙한 얼굴을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이제 계산서를 볼 차례다. 그 의자의 값은 누가 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