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끝났다. 레드카펫은 걷혔고 제천을 찾았던 배우와 감독, 음악인들도 하나둘 도시를 떠났다. 며칠 전까지 조명과 음악으로 요란했던 거리에는 다시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들어섰다. 영화제가 열리기 일주일 전이나 끝난 지금이나 도심의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시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박수는 끝났으니 이제 계산기를 두드려볼 차례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올해로 22회를 맞았다. 한두 해 개최한 축제가 아니라 20년 넘게 제천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걸고 이어온 대표 문화행사다. 그렇다면 이제 ‘성황리에 개최됐다’, ‘도시 브랜드를 높였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익숙한 문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이 알고 싶은 것은 복잡하지 않다. 그 긴 세월 동안 적지 않은 공적 재원을 투입해 제천에 도대체 무엇이 남았느냐는 것이다.
문화행사를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영화와 음악이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제천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무형의 가치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문화라는 이름이 예산의 효율성을 묻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시민의 세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문화든 체육이든 관광이든 그 돈을 왜 사용했고 무엇을 얻었는지 설명해야 하는 것은 행정의 기본적인 책무다.
영화제 기간 몇 명이 행사장을 찾았다는 숫자 하나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말해서도 곤란하다. 외지 방문객이 실제 몇 명이었는지, 이들이 제천에서 몇 시간 또는 며칠을 머물렀는지, 숙박업소와 음식점·전통시장·택시·소매점에서 얼마를 소비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평상시와 비교해 주요 상권 매출이 얼마나 증가했으며, 전체 사업비 가운데 제천지역 업체와 시민에게 실제 돌아간 돈이 얼마인지도 시민 앞에 펼쳐놓을 필요가 있다.
그런 자료가 있다면 공개하면 된다. 영화제로 숙박업소가 가득 찼고 음식점 매출이 뛰었으며 외지 관광객이 제천에서 돈을 쓰고 돌아갔다면 누가 그것을 부정하겠는가. 오히려 그런 숫자는 영화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반대로 객관적인 자료 없이 관람객 숫자와 행사장의 박수 소리만 가지고 수십억 원의 경제효과를 이야기한다면 시민에게 믿으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라 행정 스스로 계산법부터 다시 들여다볼 일이다.
더 궁금한 것은 영화제가 끝난 다음 날이다. 20년 넘게 국제영화제를 개최했다면 이제 단순히 매년 행사를 열고 무대를 철거하는 일을 반복하는 수준에서는 벗어났어야 한다. 영화와 음악을 기반으로 한 사람과 콘텐츠, 기업과 산업이 제천에 얼마나 뿌리를 내렸는지 살펴볼 때가 됐다. 축제는 엿새 만에 끝나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문화적 자산과 경제적 효과만큼은 도시 어딘가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역 영화인과 음악인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관련 창작자나 기업이 제천에 정착했는지, 영화제를 통해 만들어진 콘텐츠가 지역의 자산으로 얼마나 축적됐는지 묻고 싶다. 영화제를 계기로 만들어진 청년 일자리는 얼마나 되고, 처음 제천을 찾았던 관람객 가운데 다시 제천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하다. 22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아이가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만큼 긴 세월이다.
물론 국제음악영화제가 배우나 가수를 양성하는 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배우 한 사람, 가수 한 사람을 배출했느냐는 것으로 영화제의 성패를 판단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22회를 이어오는 동안 시민의 세금이 지속적으로 들어갔다면 적어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있었기 때문에 제천에 이것이 생겼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무엇인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을 묻는 일을 문화예술에 대한 폄훼라고 한다면 공공예산 가운데 질문할 수 있는 돈이 과연 얼마나 남겠는가.
올해 영화제 사업비가 약 50억 원 규모라면 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50억 원이라는 숫자가 무조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재정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살림살이다. 주차장과 도로, 청년과 노인, 소상공인과 복지, 관광시설과 생활SOC까지 제천 곳곳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시민에게 50억 원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50억 원이면 주차장을 몇 곳 만들 수 있다는 식의 단순 계산으로 영화제의 가치를 재단할 생각도 없다. 땅값과 사업 규모가 다른 시설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 역시 온전한 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하나만 묻고 싶다. 제천시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50억 원의 사용처 가운데 국제음악영화제가 시민에게 그만한 공공적 가치를 돌려주고 있는가. 답이 그렇다면 계속하면 되고, 아니라면 방향을 바꾸면 된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도로가 패이고 요철이 심해 더 이상 제대로 달릴 수 없다면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거나 길을 바꾼다. 처음 선택한 길이라고 해서 목적지까지 무조건 그 길만 고집하는 사람은 드물다. 행정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번 시작한 사업이라고 영원히 계속해야 할 이유는 없고, 성과가 좋으면 키우고 부족하면 고치며 실익이 없다면 과감하게 방향을 돌리는 것이 행정이다. 22년을 했다는 사실은 계속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이제 제대로 평가해야 할 이유에 더 가깝다.
축제가 끝날 때마다 ‘성황리에 폐막했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표현을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총사업비와 재원별 부담액, 유료와 무료 관객, 제천시민과 외지 방문객의 비율, 숙박객과 평균 체류시간, 지역 소비액과 지역업체 계약 비율, 티켓과 협찬수입 등을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하면 된다. 주요 상권의 행사 전후 매출까지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경제적 파급효과를 발표한다면 계산 방법도 시민에게 보여주면 된다. 방문객 숫자에 일정한 소비금액을 곱해 경제효과가 수십억 원 또는 수백억 원 발생했다고 발표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실제 소비와 체류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에서 영화제가 제천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비판하는 언론도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제천시와 영화제 역시 결과를 인정하고 구조를 손질하는 것이 순리다.
언론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도 별것 아니다. 시민이 낸 세금이 어디에 쓰였고 그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묻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행정을 칭찬하는 기사는 지역을 위한 것이고 예산의 효율성을 따지는 기사는 지역을 해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혹여 공직사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면 그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옳다. 칭찬만 듣고 가는 행정은 편할 수 있지만 편한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좋은 정책이라면 질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자료를 내놓고 설명하면 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면 된다. 언론 역시 사실과 자료를 바탕으로 비판해야 하고 잘못 보도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불편한 질문을 한다는 이유로 언론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거나 비판 자체를 행정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권력의 시간은 길어 보여도 임기가 끝나면 멈춘다. 시장도 공무원도 영화제 관계자도 언젠가는 자리를 떠나지만 시민은 그 뒤에도 제천에 남아 세금을 내고 살아간다. 오늘 결정한 수십억 원의 예산이 잘 쓰였는지 잘못 쓰였는지는 결국 그 시민들의 삶 속에서 평가받는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시민에게 설명해야지 시민에게 이해부터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무조건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22회를 했으니 23회도 해야 하고, 23회를 했으니 24회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관성 역시 경계해야 한다. 흘러간 물로 수레바퀴를 돌릴 수 없듯 과거의 명성과 화려했던 장면만으로 미래의 예산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성과가 충분하다면 더 투자하면 되고 부족하다면 규모를 줄이거나 운영방식을 바꾸면 된다. 필요하다면 영화제 자체의 방향을 다시 설계할 수도 있다.
제천시는 이제 박수보다 성적표를 내놓을 때다. 지난 20여 년 동안 문화적 자산이 얼마나 축적됐는지, 지역경제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민이 부담한 비용에 걸맞은 효과를 만들어냈는지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하면 된다. 영화제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무런 평가 없이 지난해 했으니 올해 하고, 올해 했으니 내년에도 하는 행정의 관성이다.
배우와 감독이 떠나고 화려했던 무대가 철거된 뒤에도 시민은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 레드카펫과 객석의 박수는 엿새 동안 이어진 영화제의 한 장면일 뿐 그것만으로 1년의 성적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진짜 성공한 축제라면 조명이 꺼진 뒤에도 도시 어딘가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마지막 배우가 떠나고 조명이 꺼지고 박수가 멈춘 다음 날, 제천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22년을 이어온 제천국제음악영화제라면 이제 그 질문에 답할 때도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