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수)

  • 맑음동두천 13.9℃
  • 맑음강릉 18.5℃
  • 맑음서울 15.2℃
  • 맑음대전 16.1℃
  • 맑음대구 18.0℃
  • 맑음울산 17.5℃
  • 흐림광주 18.0℃
  • 맑음부산 19.1℃
  • 구름많음고창 16.9℃
  • 맑음제주 21.2℃
  • 맑음강화 15.2℃
  • 맑음보은 16.1℃
  • 맑음금산 16.3℃
  • 구름많음강진군 18.6℃
  • 맑음경주시 15.7℃
  • 맑음거제 19.1℃
기상청 제공

[기자수첩]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공공기관이 서울 사유물인가

임금근로자 38.2%가 비정규직, 856만 명은 고용불안 속에서 일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거칠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막겠다며 총파업까지 꺼내 든 노동조합을 보면 이 말부터 떠오른다.

 

공공기관은 직원들이 서울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만든 직장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과 법률로 설립해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맡긴 기관이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면 직원은 이전한 근무지에서 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을 떠나는 것이 도저히 싫다면 본인이 다른 직장을 선택할 문제이지, 기관 전체를 서울에 붙잡아 둘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350여 곳을 검토해 올해 4분기 이전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이전에 착수할 방침이다. 반드시 수도권에 남아야 하는 기관을 제외하고는 이전 대상에 포함한다는 ‘수도권 잔류 최소화’ 원칙도 세웠다.

 

그러자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 공공기관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시장과 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어 기관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전문인력이 이탈한다는 주장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본사 이전 때 노조와 사전에 합의할 것을 요구하며 총파업까지 내걸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기관의 소재지를 정하는 국가정책에 노동조합이 사실상의 거부권을 가져야 하는가.

 

근무지가 바뀌면 직원이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집을 옮겨야 하고 자녀 교육과 배우자 직장, 가족 돌봄 문제도 생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민간기업 노동자와 지방 발령을 받은 직장인,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도 똑같이 겪는다. 공공기관 직원에게만 서울 근무를 보장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공공기관 직원들은 이전 과정에서 이사비와 주거비, 각종 정착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도 이전기관 임직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전 비용과 주거비를 지원하고 교육·의료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기관 이전을 총파업으로 막겠다는 모습은 노동권을 넘어선 기득권 지키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현실을 보면 그 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856만8천 명이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38.2%가 비정규직이다. 한시적 근로자는 584만8천 명, 시간제 근로자는 422만9천 명에 달한다. 유형이 서로 겹치는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계약 종료와 소득 감소의 불안을 안고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임금 격차도 크다. 국가 지표상 2025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월급여는 정규직의 46.1% 수준이다. 정규직이 100만 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은 평균 46만 원가량을 받는 셈이다. 직종과 근로시간, 경력 등의 차이가 반영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이 끝나면 다음 달 일자리부터 걱정한다. 공공기관의 기간제 노동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올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 지침을 내놓으면서 최소 1년 계약 보장과 공정수당 지급, 적정임금 적용을 다시 강조한 이유도 공공부문 안에서조차 불공정한 고용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1년짜리 계약이라도 연장해 달라고 호소한다. 누군가는 정규직 월급의 절반도 받지 못하면서 같은 건물에서 일한다. 누군가는 일자리를 찾아 가족과 떨어져 수도권의 비싼 월세방을 전전한다.

 

그런 현실 앞에서 안정된 신분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복지제도를 갖춘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을 떠날 수 없다”며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막아서는 모습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노조는 금융기관이 서울을 떠나면 전문인력이 빠져나가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과 기업, 전문인력이 서울에 몰려 있으니 공공기관도 서울에 남아야 한다는 논리는 수도권 집중을 영원히 고착시키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기관이 서울에 있으니 인재가 서울로 가고, 인재가 서울에 있으니 기관이 서울을 떠날 수 없다는 순환논리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면 지방에는 앞으로도 제대로 된 공공기관과 양질의 일자리가 들어설 수 없다.

 

지역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아니다. 지역에는 선택할 만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공공기관과 대기업, 금융회사와 대학이 몰려 있고 지방에는 이를 뒷받침할 기관과 산업이 부족하다. 그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꾸자는 것이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다. 공공기관 직원의 불편과 지방의 소멸 위기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직원에게는 주소와 출퇴근의 문제일 수 있지만 지방 주민에게는 일자리와 인구, 대학과 상권이 무너지는 생존의 문제다. 매년 청년이 빠져나가 학교가 문을 닫고 병원이 사라지는 지역에 공공기관 하나는 단순한 건물 한 채가 아니다. 지역에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고 관련 기업과 소비를 불러오는 최소한의 성장 기반이다.

 

노동조합이 이전 과정에서 충분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직원의 주거와 교육, 배우자의 직장, 장거리 통근 문제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업무 특성상 수도권 기능이 필요한 기관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일부 기능의 잔류를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지원 대책을 요구하는 것과 이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파업이라는 힘으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멈추려 한다면 국민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

 

서울 근무가 왜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 우선하는가. 지방에서는 수행할 수 없다는 업무가 정확히 무엇인가. 디지털 금융과 비대면 행정을 강조해 온 기관들이 유독 본사 소재지를 논할 때만 대면 업무와 물리적 거리를 앞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공기관 노조가 정말 공공성을 걱정한다면 ‘서울을 떠날 수 없다’가 아니라 ‘지방에서도 공적 기능이 흔들리지 않게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말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직원의 것이 아니다. 노조의 것도 아니고 서울의 것은 더욱 아니다. 국민 전체의 기관이다.

 

절이 옮겨간다고 중이 절을 붙잡아 세울 수는 없다. 이전한 절에서 계속 수행할지, 다른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자신의 불편을 피하려고 국민이 세운 절의 자리를 영원히 서울로 못 박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