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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멘트기금에 ‘카르텔’ 의심이 따라붙는 이유

시멘트세 대신 연 250억 원 기금 택한 정치권, 위원은 추천하고 책임은 없나

 

시멘트산업 사회공헌기금을 둘러싼 논란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2020년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와 민간기금을 놓고 지역사회가 갈라졌고, 2022년 제천·단양 기금관리위원회가 출범한 뒤에는 위원 구성과 지원 대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2024년 총선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기금위원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관계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따지는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올해는 감사 청구로 이어졌다. 전국 시멘트 생산지역 주민과 시민·환경단체 등 37개 단체, 주민 440명은 지난 20일 시멘트산업사회공헌재단의 기금 조성·배분·집행과 지역위원회 운영 전반을 감사해 달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 청구 대상에는 제천과 단양을 비롯해 강릉·동해·삼척·영월 등 6개 생산지역이 포함됐다.

 

감사 청구인들은 기금이 주민 건강과 환경개선보다 견학과 나들이, 체육행사 등에 편중됐다고 주장한다. 지역 기금관리위원이 자신과 관련된 사업의 제안과 심사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현재는 감사 청구가 접수된 단계다.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하면 사업별 집행액과 이해충돌 여부도 재단의 결산자료, 지역위원회 회의록과 정산서 등을 조사해 청구인들이 제기한 의혹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을 이해하려면 기금이 만들어진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천·단양 시멘트기금은 일반적인 기업 기부금과 출발부터 달랐다. 국회에서 논의하던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의 대안으로 등장했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시멘트업계와 직접 협약을 맺어 현재의 틀을 만들었다.

 

세금으로 걷을 것인가, 기업이 기금으로 낼 것인가

 

시멘트 생산지역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2010년대 중반부터 시멘트 생산에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시멘트 생산량 1t당 1천 원을 과세하고 세입의 상당 부분을 공장 주변 환경개선과 주민 건강, 지역균형발전에 사용하는 내용이었다.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 지하자원처럼 지역에 환경적 부담을 발생시키는 시멘트산업에도 목적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법정세가 도입되면 생산량에 따라 세입이 발생한다. 지방정부 예산으로 편입되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예산심사와 결산검사, 행정사무감사 대상도 된다.

 

충북도와 제천시·단양군, 지역 지방의회는 이러한 이유로 지역자원시설세 도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제천·단양 지역구 엄태영 국회의원은 세금과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

 

엄 의원은 2020년 시멘트업체가 생산량에 따라 기금을 출연하고 지역별 기금관리위원회가 주민에게 필요한 사업을 선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세금보다 사용 범위가 넓어 건강검진과 경로당 보수, 장학사업 등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곳에 재원을 투입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엄 의원은 당시 지방정부 산하에 기금관리위원회를 구성하면 기금의 투명한 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제천 송학면 기관·단체와 단양 매포읍 이장협의회 등 일부 지역단체도 기금 방식에 찬성했다. 이들은 2020년 12월 성명을 내고 주민이 원하는 사업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금이 현실적인 지원방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충북도는 반대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금은 법적 강제력이 없어 규모와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렵고, 운영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지역과 주민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방세도 조례와 예산편성을 통해 피해지역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금은 용도가 제한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국회는 지역자원시설세 법안 처리를 보류했고 시멘트업계가 제시한 민간기금 방식이 채택됐다. 법안의 처리 보류를 엄 의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심사 대상이었고 여러 의원과 정부 부처, 지방정부와 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엄 의원이 기금 방식을 지지하고 현재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당시 협약과 발언을 통해 확인된다.

 

국회의원과 시멘트업계가 만든 연 250억 원 기금

 

엄 의원은 2021년 2월 25일 국회에서 권성동·이철규·유상범 의원, 한국시멘트협회, 국내 7개 시멘트업체와 ‘지역사회 공헌 확대를 위한 시멘트업계의 자발적 기금 조성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시멘트업계는 매년 25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전체 기금의 70%는 시멘트 생산시설 반경 5㎞ 이내 지역에, 나머지 30%는 공장이 있는 시·군에 지원하도록 했다. 지역별 사업 선정과 집행은 기금관리위원회가 담당하는 구조였다.

 

엄 의원은 당시 협약을 피해지역 주민 지원을 위한 성과로 평가했다. 주민 지원방식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이뤄낸 큰 진전이며, 논의에 머물던 기금이 실제 주민 지원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시멘트산업사회공헌재단은 2022년 출범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재단 출범 당시 이 기금이 2021년 시멘트 생산지역 국회의원 4명과 시멘트업체 7개사의 합의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제천과 단양의 지역기금관리위원회도 같은 해 구성됐다. 당시 두 지역에서 운용할 것으로 제시된 기금은 연간 약 77억 원이었다.

 

지역위원회에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장·군수, 지방의회가 추천한 인사, 시멘트업체 관계자와 지역대표 등이 참여했다. 위원회마다 7명 안팎으로 구성됐으며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도 위원 추천권이 주어졌다. 민간기업이 출연한 기금이지만 지역위원회 구성에는 정치권과 지방정부가 참여한 것이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엄 의원이 제천과 단양위원회에 누구를 추천했는지, 추천 기준과 각 위원의 임기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재단 홈페이지에는 사업 공고와 선정 결과, 결산자료 등이 공개돼 있지만 추천기관별 위원 명단과 사업 심사 과정까지 일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2024년 총선까지 번진 위원장 논란

 

제천·단양 기금관리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둘러싼 논란은 2024년 총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새로운미래 이근규 후보는 제천과 단양 기금관리위원회 책임자가 엄 의원의 측근이라고 주장하며 기금 운영의 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제천과 단양 기금위원장을 엄 의원의 후원회장 출신 인사들이 맡고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엄 의원은 토론회에서 두 위원장이 자신의 측근이라는 주장을 부인했다. 다만 자신과 친한 사람이 위원장을 맡으면 안 되느냐는 취지로 반문했다. 기금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재단법인 체제를 추진했다는 설명도 내놨다.

 

당시 제천기금관리위원장은 이종호 씨, 단양기금관리위원장은 김종태 전 단양군의원이었다. 두 사람이 엄 의원의 후원회장 출신이라는 사실은 해당 토론회를 보도한 복수 언론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엄 의원이 두 사람을 위원장으로 직접 임명했다거나 선출 과정에 개입했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역 기금관리위원장은 구성된 위원들이 선출하는 자리다. 후원회장 출신이라는 사실과 위원장 선임 과정에 대한 개입 여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엄 의원이나 의원실이 개별 지원사업을 제안하거나 심사와 집행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기금의 공식적인 집행 주체는 시멘트산업사회공헌재단과 지역 기금관리위원회다. 개별 사업이 부적정하게 집행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일차적인 책임도 사업을 심사·의결하고 집행·정산한 재단과 지역위원회에 있다.

 

다만 지역구 국회의원이 참여한 추천 구조는 기금이 순수한 민간기부금과 다른 성격을 갖게 한다. 정치권이 위원 구성에 참여하면서도 집행 단계에서는 민간재단의 업무로 분리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행사성 사업과 셀프심사 의혹

 

지난 20일 감사원에 제출된 공익감사 청구서에는 기금 사용 목적과 위원회의 이해충돌, 사업비 정산, 지역별 배분에 관한 의혹이 담겼다.

 

감사 청구인 측은 2024년 전국 6개 생산지역에서 집행된 약 203억 원 가운데 107억 원이 견학과 나들이, 체육행사, 마을잔치 등 행사성 사업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주민 복지와 교육·환경 분야에는 약 51억 원이 집행됐고 환경보호 분야는 약 20억9천300만 원이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이 수치는 감사 청구인들이 국회와 관계기관 등에서 확보했다고 밝힌 자료를 토대로 자체 분석한 결과다. 감사원이나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결산 결과는 아니다.

 

견학과 체육행사도 주민 복지와 공동체 지원사업에 포함될 수 있다. 사업 명칭만으로 목적 외 사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각 사업의 대상과 내용, 집행 결과를 기금 운영규정과 대조해야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다.

 

제천지역과 관련해서는 관리위원 3명이 관련된 사업에 각각 3억7천만 원, 1억3천800만 원, 5천600만 원 등 모두 약 6억1천만 원이 집행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구인 측이 제시한 제천 전체 집행액 15억1천800만 원의 약 40%에 해당한다.

 

다른 집계에서는 2024년 제천지역 집행액을 14억5천270만 원으로 제시하면서 환경 관련 사업은 300만 원 한 건이었다고 주장했다.

 

제천지역 전체 집행액이 자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집계 연도와 포함 사업의 범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관리위원 개인이 돈을 받은 것인지, 위원이 소속되거나 관계된 단체가 사업을 수행한 것인지도 공개된 보도만으로 명확하지 않다.

 

위원과 관련된 단체가 기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적정 집행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해당 위원이 사업 심사와 의결에 참여했는지, 심사에서 회피했다면 그 기록이 남아 있는지가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단양에서는 현직 공무원이 마을 대표 자격으로 관련 사업 심사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감사 청구 내용에 포함됐다. 환경단체에 수천만 원이 지원됐다는 지역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 역시 해당 단체와 사업명, 지원액, 사업 결과, 심사 참여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환경단체가 주민 환경교육이나 환경개선사업을 수행했다면 지원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단양지역위원회는 2024년 단양군보건의료원에 6억5천만 원 상당의 내시경기와 초음파기, 망막·녹내장 검사기 등을 지원했다. 취약계층 지원과 신생아 축하금, 소아과 진료 예약 대행사업도 추진했다. 기금이 주민 의료와 복지에 사용된 실적과 일부 사업을 둘러싼 운영 의혹이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조성 과정의 역할과 운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시멘트기금 논란에서 엄태영 의원의 역할은 두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기금 조성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역할이 확인된다. 엄 의원은 지역자원시설세보다 민간기금 방식을 지지했고, 시멘트 생산지역 국회의원과 업체 간 협약에 참여했다. 기금 출범을 주민 지원을 위한 성과로 평가했으며 제천·단양 지역위원 구성 과정에서도 국회의원 추천 몫이 존재했다.

 

운영 단계에서는 역할의 범위가 달라진다. 사업 선정과 집행, 정산 권한은 재단과 지역위원회에 있다. 현재까지 엄 의원이 개별 사업에 개입했거나 부적정 집행에 관여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법률적 집행 책임과 제도 설계에 참여한 정치적 책임이 갈리는 지점이다.

 

개별 사업의 위법·부당 여부는 사업을 심사하고 집행한 지역위원회와 재단을 중심으로 가려야 한다. 엄 의원과 관련해서는 추천권을 실제로 어떻게 행사했는지, 추천 인사와 사업 수혜단체 사이에 관계가 있었는지, 운영 논란이 반복된 이후 어떤 점검이나 제도 보완에 나섰는지가 평가 대상이 된다.

 

이러한 책임은 특정 사업비를 누가 결재했느냐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역자원시설세 대신 민간기금을 선택한 판단, 정치권 추천을 포함한 위원회 구조, 기금의 투명성을 강조했던 당시 설명이 실제 운영 결과와 부합했는지를 살피는 책임이다.

 

감사원이 공익감사를 실시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감사가 시작되면 청구인 측이 제시한 행사성 지출 비율과 셀프심사 의혹, 제천·단양의 사업별 배분과 정산 과정이 공식 검증 대상에 오르게 된다.

 

감사 결과와 별도로 제천·단양 기금의 운영구조는 이미 공개성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추천기관별 위원 명단과 추천 기준, 사업별 심사 결과, 이해관계 위원의 회피 여부가 한눈에 확인되지 않는 현재 방식으로는 제기된 의혹을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렵다.

 

기금 조성 당시 지역 국회의원의 역할은 분명했다. 세금 대신 기금을 선택했고 업계와의 협약을 통해 제도를 출범시켰다.

 

앞으로의 책임은 개별 사업의 집행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설명하고 검증하는 데 있다. 추천 과정과 운영자료가 공개되고 감사 결과에 따라 제도가 보완되는지 여부가 그 책임의 범위를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