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 빠진다던 투수블록, 1년도 안 돼 3분의 2 기준 미달
서울연구원은 최근 서울 시내에서 투수블록을 설치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30곳을 골라 현장 성능을 조사했다.
투수블록의 성능은 일정 시간 동안 블록이 얼마나 많은 물을 통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투수계수로 평가한다. 조사 대상에 설치된 제품은 당시 기준에 따라 투수계수 초당 0.1㎜ 이상인 3등급 제품이었다.
현장 조사에서 이 기준을 충족한 곳은 30곳 가운데 10곳에 그쳤다. 18곳은 관리기준의 약 40% 수준에 머물렀고 나머지 2곳에서는 투수 기능이 확인되지 않았다. 시공된 지 1년도 안 된 장소의 3분의 2가 관리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셈이다.
이번 조사만으로 처음부터 성능이 부족한 제품이 납품됐는지, 정상 제품이 시공된 뒤 오염물질로 막혔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서울연구원도 제품과 시공, 현장 오염 등 여러 원인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존 장기 추적조사와 비교하면 성능 저하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르다.
서울연구원의 장기 조사에서는 보도용 3등급 투수블록이 관리기준인 초당 0.1㎜ 수준까지 떨어지는 데 평균 3.2년이 걸렸다. 1등급 보도용 제품은 5.1년 뒤에도 비교적 양호한 성능을 유지했고, 차도용 1등급 제품은 기준 이하로 떨어지는 데 약 17년이 걸린 것으로 분석됐다.
제품 자체에 문제가 없었다면 시공 1년도 되지 않아 조사 대상의 다수가 기준 아래로 떨어진 원인을 설명해야 한다. 납품 제품의 성능과 시공 상태, 현장 오염 정도를 함께 조사해야 제조와 시공, 관리 가운데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가려낼 수 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물순환 회복과 저영향개발 정책에 따라 투수블록 시공을 확대했다. 현재 서울 시내 전체 보도의 약 15%에 투수블록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블록보다 가격이 10∼20%가량 비싸지만 빗물 유출을 줄이고 도시 열섬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해 예산을 투입했다.
투수블록은 표면과 내부의 미세한 공극을 통해 빗물을 아래로 흘려보낸다. 흙과 모래, 미세먼지, 낙엽 분진, 차량 오염물질이 공극으로 들어가면 물길은 점차 좁아진다. 보행자와 차량의 반복적인 압력은 이물질을 공극 깊숙이 밀어 넣는다.
서울시가 2017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투수블록의 성능이 시공 1년 뒤 초기의 약 45%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설치 후 2년 이내 구간은 상당수가 초당 0.1㎜ 이상을 유지했지만 3년이 지난 구간부터 기준 적합률이 약 75%로 낮아졌다.
공극 막힘은 투수블록이 가진 구조적인 약점이다. 그렇다고 설치 1년도 안 된 제품의 급격한 성능 저하까지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당초 납품된 제품이 계약등급을 충족했는지, 시공 과정에서 공극이 흙이나 모래로 오염됐는지, 시공 직후 현장 성능을 측정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투수블록의 성능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색상과 모양이 멀쩡하면 제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설치 면적과 집행한 예산은 기록하면서 실제 물이 얼마나 빠지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면 사업 효과를 판단할 근거도 사라진다.
▶ 시험성적서는 합격, 현장 블록은 왜 물을 막았나
납품 제품의 성능을 둘러싼 논란은 LH 공사에서도 발생했다.
2022년 파주운정3지구 A-26블록 아파트 건설현장에 설치된 보차도용 투수블록이 기준 미달로 판명돼 재시공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시 설치한 제품도 LH가 요구한 투수등급은 물론 KS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LH가 공고에서 요구한 투수성능 2등급은 투수계수 초당 0.5㎜ 이상이었다. 국토교통부와 LH파주사업단, 시험기관 등이 참관한 현장검증에서 측정된 수치는 초당 0.018∼0.046㎜였다.
계약상 요구한 2등급 기준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투수블록의 기본 기준으로 적용된 초당 0.1㎜에도 크게 못 미쳤다. 기준 미달 제품을 걷어내고 다시 시공했는데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자재 납품과 현장 검수 절차 전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평택고덕 A-39블록 현장에서는 실시설계에 반영된 투수블록과 다른 제품이 시공된 사실이 확인돼 재시공이 진행됐다.
LH는 당시 품질검사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재조달과 품질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준 미달 제품이 사용된 다른 공공주택과 산업단지에 대해서도 조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투수블록은 겉모습만으로 등급을 구분하기 어렵다. 외관과 규격이 비슷해도 블록 내부의 공극 크기와 연결 상태, 골재와 제조 방식에 따라 투수성능이 크게 달라진다.
발주기관은 제조업체가 제출한 공인시험성적서와 인증서를 확인해 제품을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서류에 적힌 제품과 현장에 납품된 제품이 같은 품질인지 확인하려면 반입 제품을 무작위로 채취해 시험해야 한다.
시험기관에서 성적서를 발급받을 때 사용한 시료가 기준을 통과했더라도 대량 생산된 모든 제품이 같은 성능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제조공정과 원료가 달라지거나 생산 시기별 품질 편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성적서 발급 과정에서 업체가 시료를 직접 골랐는지, 시험을 받은 제품과 현장 납품 제품의 제조일자와 생산번호가 일치하는지, 오래된 시험성적서를 반복 사용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발주기관이 업체가 제출한 서류만 확인하고 현장 반입 제품을 검사하지 않았다면 기준 미달 제품을 걸러내기 어렵다. 준공검사에서 보도의 평탄도와 색상, 파손 여부만 살피고 실제 물이 빠지는지 측정하지 않는다면 성능 미달 제품은 공사가 끝난 뒤에도 그대로 남는다.
투수성능 등급제와 인증제도가 있어도 현장 제품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빠지면 시험성적서는 품질을 보증하는 문서가 아니라 공사를 통과하기 위한 서류로 머물 수 있다.
투수블록의 성능은 오염물질을 투입한 뒤 측정한 투수계수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1등급은 초당 1㎜ 이상, 2등급은 0.5㎜ 이상 1㎜ 미만, 3등급은 0.1㎜ 이상 0.5㎜ 미만이다. 초당 0.1㎜를 밑돌면 관리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시는 2026년 3월부터 시 발주공사에 2등급 이상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2027년부터는 1등급 제품만 사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조달시장에서도 투수계수를 등급별로 표시하고 다수공급자계약을 체결할 때 제품 규격별 공인시험성적서를 제출하도록 제도가 보완됐다.
기준 강화가 현장의 성능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각 지방정부가 계약 시방서에 어떤 등급을 요구하는지 다르고, 현장 반입검사와 준공 후 성능검사를 어떻게 하는지도 제각각이다.
발주기관이 3등급 제품을 계약했다면 1등급보다 성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불량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계약한 등급이나 KS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설계와 다른 제품을 시공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 블록만 투수제품이면 끝? 땅속은 불투수 구조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사용했다고 투수포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투수블록을 통과한 물은 받침안정층과 투수기층, 보조기층을 지나 지반으로 스며들거나 유공관을 통해 배수돼야 한다. 블록 아래에 물길을 확보하지 않으면 표면에서 통과한 빗물이 하부에 갇히게 된다.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확인한 동북권체육공원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해당 사업은 공원 보행로 3천299㎡를 투수블록 포장으로 설계했다. 설계자는 현장 지반의 투수계수를 조사해 침투식이나 배수식 구조를 선택해야 했지만 관련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차량 진입이 가능한 공간에 필요한 투수보조기층 300㎜를 설계에서 누락하고, 빗물에 섞인 모래와 세립토가 기층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투수시트도 일부 반영하지 않았다. 투수기층에 사용한 골재의 입도 역시 서울시 기준과 다르게 설계됐다.
블록은 투수제품이었지만 하부는 투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준공 이후 현장에서는 강우 뒤 물고임과 포장면 침하가 발생했다.
감사위원회는 설계자가 관련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발주기관도 이를 바로잡지 않은 채 설계용역을 준공했다고 지적했다. 시공자와 감리자가 일부 누락 사실을 발견했지만 전체 구조를 기준에 맞게 바로잡지는 못했다.
이 사례는 투수블록 한 장의 시험성적서만으로 전체 포장의 성능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완성된 포장의 성능은 블록과 줄눈재, 받침층, 투수기층, 보조기층, 원지반과 배수시설이 함께 결정한다. 블록만 투수제품으로 구매한 뒤 일반 보도와 같은 방식으로 시공하면 예산만 더 들이고 효과는 얻지 못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제조하고 시공한 제품도 관리하지 않으면 성능이 떨어진다. 일반적인 노면 청소만으로는 공극 깊숙이 들어간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어렵다. 진공 흡입이나 고압세척 등 투수포장에 맞는 장비와 방법이 필요하다.
청소 뒤에는 성능이 실제로 회복됐는지도 다시 측정해야 한다. 공극 청소를 실시했다는 작업기록만 있고 청소 전후의 투수계수가 없다면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설치 장소도 따져야 한다. 흙과 모래의 유입이 많거나 공사차량이 자주 통행하는 곳, 경사가 급해 빗물이 지면으로 스며들기 전에 흘러가 버리는 곳에는 투수블록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투수블록 성능 저하를 모두 제조업체의 제품 불량으로 몰아가도 원인을 놓친다.
납품 당시부터 계약등급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제품 품질과 검수의 문제다. 정상 제품을 사용했지만 하부기층과 배수구조를 설계와 다르게 만들었다면 설계·시공·감리의 책임이다. 준공 당시 성능을 충족했지만 청소와 점검을 하지 않아 공극이 막혔다면 유지관리의 문제다.
세 가지가 한 현장에서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인을 가리려면 공사 시방서와 납품 제품의 시험성적서, 제조일자와 생산번호, 반입검사 기록, 현장 시료 시험 결과를 비교해야 한다. 하부기층의 두께와 골재 입도, 투수시트와 유공관 설치 여부도 설계도면과 대조해야 한다.
준공 시점에 현장 투수계수를 측정했는지, 하자담보 기간에 성능을 다시 확인했는지, 공극 청소를 몇 차례 실시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관련 자료가 없다면 그것 자체가 관리 실태를 보여준다. 친환경과 침수예방을 내세워 일반블록보다 비싼 자재를 구매하면서도 그 효과를 확인할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 설치 면적보다 현장 성능을 공개해야
행정기관은 투수블록을 몇 제곱미터 설치했는지, 사업비를 얼마나 집행했는지는 공개한다. 시공된 포장이 초당 몇 밀리미터의 물을 통과시키는지는 좀처럼 알리지 않는다.
발주 단계에서는 투수등급을 명확히 정하고 납품 단계에서는 현장 반입 제품을 무작위로 채취해 시험해야 한다. 준공검사 때는 블록 한 장이 아니라 완성된 포장 전체의 성능을 확인해야 한다.
하자담보 기간에도 반복 측정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면 제품과 시공, 유지관리 가운데 원인을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극 청소 주기와 예산도 공사계획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시험성적서 한 장으로 준공을 통과하고 이후에는 아무도 물 빠짐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투수블록 사업은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비싼 포장 교체사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
블록의 이름이 아니라 빗물이 어디로, 얼마나 빠지는지가 성능이다. 그 답은 업체가 제출한 서류가 아니라 이미 시공된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