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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계엄엔 침묵, 권한엔 직진···이것이 사법독립인가

 

“삼권분립은 세 권력이 제각각 왕이 되라는 제도가 아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는 서로 독립하면서도 견제와 협의를 통해 국가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국회가 다수 의석만 믿고 밀어붙이면 입법독주가 되고, 대통령이 인사권과 거부권만 앞세우면 행정독재가 된다. 법원도 사법부 독립을 방패로 설명과 협의를 거부한다면 사법권력의 독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있느냐가 아니라, 왜 지금 이렇게 행사했느냐가 문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통령과 직접 만나지 않은 서면 제청이었다. 대법원은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고 서면 제청 방식은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면담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제청 형식을 둘러싼 공방을 넘어 대통령실과 대법원이 후보자 선정에서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서면 제청은 불법이 아니지만, 합법이라고 모두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대통령과 반드시 만나야 하거나 후보자를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이나 탄핵 사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정치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나 판결을 이유로 대법원장의 탄핵을 압박한다면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도 헌법이고,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회의 동의권도 헌법이다.”

 

대법관 임명 절차는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을 하나로 연결해 놓았다. 어느 한 기관도 혼자 대법관을 임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에 의견을 조율해 온 관행도 두 권한의 충돌을 막고 대법관 공석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였다.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그대로 제청해서도 안 되지만, 대법원장이 자신의 후보자를 사실상 확정해 통보한 뒤 나머지 기관에 책임을 넘겨서도 안 된다.

 

“다섯 달 동안 멈춰 있던 제청권이 왜 지금 갑자기 직진했는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는 지난 1월 이미 4명으로 압축됐다. 조 대법원장이 최종 후보를 제청하지 않으면서 노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퇴임한 뒤 공석이 발생했고 그 상태가 5개월 넘게 이어졌다. 대통령실과 대법원이 후보자를 놓고 대립했다면 양측 모두 책임이 있다. 조 대법원장도 독자적인 제청권 행사가 가능했다면 왜 수개월을 기다렸는지, 대통령과의 협의가 필요해 기다렸다면 왜 마지막에는 합의되지 않은 후보를 제청했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의 의심은 서면 한 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조 대법원장을 바라보는 국민의 불신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법원이 보여준 태도에서 누적됐다. 비상계엄이 지속됐다면 법원의 독립과 재판권도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수 있었다. 법관 파견과 사법 기능 통제 가능성까지 거론된 상황이었다. 사법부의 존립 기반인 헌정질서가 흔들렸지만 조 대법원장은 국민이 체감할 만한 단호한 메시지를 신속하게 내놓지 않았다.

 

“계엄 앞에서는 묵언수행, 정치권 앞에서는 사법독립인가.”

 

사법부가 실제로 위협받던 순간에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던 대법원장이 국회의 사법개혁과 대법관 인사 문제에서는 사법부 독립을 강하게 주장한다면 국민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 독립은 계엄권력 앞에서도 지켜져야 하고 대통령과 국회 앞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지켜져야 한다. 상대에 따라 독립의 목소리가 달라진다면 원칙이 아니라 선택적 대응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이재명 사건에는 번개였고, 내란 사건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가.”

 

대법원은 2025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항소심 선고 후 36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전원합의체 회부와 심리, 선고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대법원은 선거법 사건의 신속 처리를 규정한 이른바 6·3·3 원칙을 근거로 제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재판 과정에서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구속기간을 기존 실무와 다르게 시간 단위로 계산한 구속취소 결정과 재판 속도, 관련자들의 구속영장 기각이 잇따라 논란이 됐다. 최근 대법원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관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고 역사적·사법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사건마다 법리는 달라도, 원칙까지 달라 보이면 설명해야 한다.”

 

중대한 내란 사건을 대법관 전체가 심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사건마다 쟁점과 기록의 양도 다르기 때문에 처리 기간만 비교해 정치적 의도를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대법원은 이재명 사건에서 왜 그렇게 속도를 냈고 내란 사건에서는 왜 충분한 심리가 우선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전원합의체 회부가 법리 통일을 위한 것이라면 기존 판례와 충돌하는 쟁점이 무엇인지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법관은 판결로 말하지만,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개별 법관은 판결문을 통해 판단의 이유를 밝힌다. 대법원장은 개별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인 동시에 사법행정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의 수장이다. 사건 배당과 전원합의체 회부, 대법관 제청 지연과 같은 사법행정의 문제까지 판결문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논란이 반복될 때 국민 앞에 나서 판단의 기준과 절차를 설명하는 것도 대법원장의 책무다.

 

“개별 판결의 책임과 사법부 수장의 책임은 구분해야 한다.”

 

지귀연 재판부의 구속취소 결정이나 개별 판사의 영장 판단을 모두 조 대법원장의 지시로 돌릴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판사를 공격하거나 법원을 정치권 아래 두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에게 물어야 할 것은 개별 사건의 결론을 지시했느냐가 아니다. 반복되는 논란을 어떻게 관리했고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책임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일수록 더 많이 절제하고 더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사법부는 선거를 통해 구성되지 않는다. 법관의 임기와 재판 독립이 보장되고 국민이 판결에 직접 책임을 물을 방법도 제한돼 있다. 사법부가 독립돼야 하는 이유인 동시에 더 높은 절제와 투명성을 요구받는 이유다. 사법부 독립이 강할수록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도 무거워야 한다.

 

“설명 없는 독립은 고립이 되고, 견제받지 않는 권한은 독선이 된다.”

 

조 대법원장은 자신의 제청권이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은 임명권을, 국회는 동의권을 내세울 수 있다. 세 기관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면 삼권분립은 협력의 원리가 아니라 권력투쟁의 무기로 변한다.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도 국가 기능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 절제하고 조율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켜야 할 것은 법원의 자존심이 아니라 국민의 사법 신뢰다.”

 

조 대법원장은 이제 답해야 한다. 왜 계엄 앞에서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고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는 이례적인 속도를 냈는가. 왜 대법관 자리를 수개월 동안 비워뒀으며 지금에 와서 합의되지 않은 후보자를 제청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사법부 독립만 외친다면 법원 우선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법부 독립은 국민으로부터 독립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권력의 부당한 압력에서는 독립해야 하지만 국민의 합리적인 의문에는 답해야 한다. 법원이 국민의 의심을 정치적 공격으로만 치부하는 순간,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은 법원 밖이 아니라 법원 안에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