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는 “우리는 증축을 원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 작가가 말한 ‘우리’는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당원 전체인가,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인가, 아니면 자신과 정치적 판단을 공유하는 일부 강성 지지층인가.
지난 17일 치러진 민주당 당대표 선거는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놨다. 김민석 후보는 선호투표를 거쳐 54.08%를 얻어 정청래 후보를 꺾었다. 민주당원들은 팬덤의 요구에 머무는 정치보다 이재명 정부의 안정과 성공 가능성을 선택했다.
정치인을 지지한 사람이 그 정치인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를 단순히 김민석과 정청래 두 사람의 승패로만 봐서는 안 된다. 정 후보는 강한 개혁과 선명성을 앞세웠고, 김 후보는 당정 안정과 집권여당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당원들은 누가 더 강하게 말하느냐보다 누가 이재명 정부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를 판단했다.
김 후보가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충청권에서는 불과 0.44%포인트 차이로 앞섰고, 강원·대구·경북 경선까지 두 사람의 누적 격차도 1.48%포인트에 그쳤다. 어느 한쪽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접전이었다.
승부가 갈린 곳은 호남이었다. 김 후보는 호남에서 57.54%를 얻어 32.65%에 그친 정 후보를 24.89%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민주당의 정치적 본진이 팬덤의 열광과 강한 구호보다 정권의 안정과 성공 가능성에 전략적으로 표를 던졌다.
서울·경기에서도 김 후보가 정 후보를 0.38%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전국 권리당원 누적 득표율은 김민석 49.91%, 정청래 41.51%, 송영길 8.58%였다. 김 후보는 호남에서 승기를 잡은 뒤 당원이 가장 많이 몰린 수도권에서도 우위를 지켰다.
정 후보의 팬덤이 무너졌다고 볼 수는 없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50.70%를 얻어 김 후보의 49.30%를 근소하게 앞섰고, 정 후보와 함께 움직인 인사들도 최고위원에 다수 당선됐다. 팬덤은 여전히 강하지만 당 전체의 선택을 독점할 정도의 힘은 보여주지 못했다.
팬덤이 몰락한 것이 아니라 팬덤 정치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유 작가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이 원한 것은 기존 민주당이라는 건물에 한 층을 더 올리는 ‘증축’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기존 건물을 허물고 중도와 보수까지 끌어들이는 ‘재건축’을 하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포용과 통합을 내세운 외연 확장이 기존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유 작가는 지난 7월 이 대통령의 선택이 매우 위험하며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민주당은 재건축이 필요할 만큼 문제가 많은 정당이 아니며, 대중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재건축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필패론’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민주당 대표 선거가 보여준 당원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당원들은 유 작가가 우려했던 재건축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후보보다 이재명 정부와 호흡하며 당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후보를 선택했다.
당원들이 정말 기존 팬덤을 중심으로 한 증축만을 원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어야 한다. 정 후보가 승리하고 김 후보의 당정 안정론은 외면받았어야 한다. 실제 표심은 유 작가가 ‘우리’라고 규정했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필패한 것은 재건축이 아니라 ‘필패론’이었다.
물론 당대표 선거 한 번으로 이 대통령의 통합과 확장 노선이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민생과 경제, 개혁 성과와 다음 전국선거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결과가 이 대통령의 모든 선택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대통령의 외연 확장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단정의 근거가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원들은 확장을 거부하지 않았고, 팬덤의 결집보다 당정 안정에 힘을 실었다. 실패를 예고했던 주장과 당원들의 실제 선택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드러났다.
유 작가가 정치적 의견을 밝히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문제는 자신의 판단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영향력 있는 논객의 생각과 수백만 당원·지지자의 뜻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자신이 지지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정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비판과 감시의 영역을 넘어선다. 대통령을 만든 공로를 주장하며 국정 노선에 대한 지분까지 요구하는 순간 지지는 정치적 소유권으로 변질된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팬덤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을 만든 것은 특정 논객도, 특정 방송도, 특정 팬덤도 아니다.
국민이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했고 국정을 운영할 권한과 책임을 맡겼다. 대통령은 자신을 열렬히 지지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지만 그들의 요구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 당선된 순간부터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은 국민까지 대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팬덤은 선거에서 필요하다. 후보가 어려울 때 버틸 힘을 주고 메시지를 확산하며 흔들리지 않는 기초 지지층을 만든다. 치열한 경선과 전국선거에서 팬덤은 정치인을 출발선에 세우고 끝까지 달리게 하는 강력한 자산이다.
문제는 정치인이 당선된 뒤에도 팬덤의 언어와 요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지지층이 듣고 싶은 말만 하고 비판자를 적으로 규정하면 정치는 충성 경쟁으로 변한다. 팬덤의 환호가 커질수록 중도층은 멀어지고 정치인의 시야는 좁아진다.
팬덤은 자신들이 정치인을 지킨다고 믿는다. 정치인이 자신들의 요구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도 배신자라고 공격한다면 그 팬덤은 더 이상 방패가 아니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정치인을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가두는 벽이 된다.
정치인을 키울 수는 있어도 정치인을 소유할 수는 없다.
이번 민주당 대표 선거가 남긴 메시지는 김민석의 승리와 정청래의 패배에만 있지 않다. 팬덤의 결집과 강한 구호만으로 집권여당을 운영할 수 없다는 현실을 당원들이 보여줬다. 정치는 팬덤의 만족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김민석 대표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친명 지지층과 자신의 당선을 도운 세력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정청래와 송영길을 지지한 당원들을 품고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게도 실력과 안정감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팬덤 정치의 방식은 그대로 둔 채 주인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팬덤의 박수로 선거에서 이길 수는 있지만 국민의 신뢰 없이 정치적으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렵다.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에게도 인정받을 때 비로소 한 정파의 후보에서 모두의 지도자로 올라설 수 있다.
선거는 지지층이 이기게 하지만 정치는 반대하는 국민까지 품을 때 완성된다.
팬덤은 출발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