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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계좌는 정상, 뒤로는 백마진···'수의계약' 정부 대책 '허점'

수의계약 상한·e호조+빌 의무화 추진···정상 계약으로 위장한 리베이트는 여전히 전산망 밖

 

지방정부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다. 업체는 계약한 물품을 납품하고 담당 공무원은 검수를 마친다. 세금계산서와 지출결의서도 갖춰졌다. 계약대금은 등록된 업체 명의의 계좌로 정확하게 지급된다. 회계시스템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래다.

 

그런데 대금 지급이 끝난 뒤 업체가 받은 돈의 일부를 현금이나 상품권, 고가 물품 또는 향응의 형태로 계약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되돌려준다면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당사자 계좌에 돈을 직접 보내지 않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다면 정부의 전산망은 이를 포착할 수 있을까.

 

행정안전부가 지방정부의 수의계약 몰아주기와 공금 횡령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놓친 가장 위험한 사각지대는 정상적인 계약과 계좌 뒤에 숨은 ‘백마진’이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계약 횟수 제한과 지출 시스템 통제다. 기초 지방정부는 동일 업체와 연 5회 또는 2억 원, 광역 지방정부는 연 7회 또는 3억 원을 초과해 1인 견적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된다.

 

사업자가 직접 계좌를 등록하고 대금을 청구하는 전자대금청구시스템 e호조+빌도 의무화한다. 거래처명과 예금주가 일치하지 않으면 지출을 차단하고 담당 공무원이 업체 계좌를 임의로 입력하거나 변경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공무원이 업체 계좌를 자신의 계좌나 제3자 계좌로 바꿔 공금을 가로채는 횡령에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정부 명의 보통예금계좌를 거쳐 돈을 빼돌리는 행위도 전산통제가 강화되면 이전보다 어려워진다.

 

동일 업체에 대한 수의계약 상한도 특정 업체에 수십 건의 계약을 노골적으로 몰아주는 관행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공금 흐름을 전국적으로 점검하는 것 역시 필요한 조치다.

 

문제는 이번 대책이 회계시스템에 흔적을 남기는 비교적 단순한 횡령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지방계약을 둘러싼 비리는 담당자가 공금을 직접 빼돌리는 방식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계약과 납품이 실제로 이뤄지고 대금까지 업체 계좌로 정상 지급된 뒤 그 이익 일부가 관계자에게 돌아간다면 이는 횡령 방지 시스템만으로 적발하기 어렵다.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 금품을 받았다면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뇌물죄나 청탁금지법 위반 등이 문제 될 수 있지만, 지방정부 내부 회계자료에는 비정상적인 지출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백마진의 재원은 계약가격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시중에서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물품을 비싸게 계약하거나, 계약한 규격보다 품질이 낮은 제품을 납품하고도 정상적으로 검수한 것처럼 처리하면 업체에 부당한 이익이 남는다.

 

공사의 물량과 자재비, 인건비가 실제보다 과다하게 산정되거나 필요하지 않은 용역이 계약에 포함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정가격과 견적서, 검수자료가 형식적으로 갖춰져 있으면 회계시스템은 계약가격이 왜 높아졌는지까지 판단하지 못한다.

 

업체가 이렇게 확보한 이익 일부를 계약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 돌려준다면 이른바 백마진 구조가 완성된다. 직접적인 현금뿐 아니라 상품권과 고가 물품, 반복적인 접대, 개인적인 비용의 대납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거나 관계자와 연결된 다른 업체에 일감을 주는 간접적인 방법도 의심 대상이 될 수 있다.

 

개별 행위가 실제 뇌물이나 위법한 리베이트에 해당하는지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거래가 계약업체 명의의 계좌로 대금이 지급됐는지만 확인하는 시스템으로는 드러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백마진은 계약이 끝난 뒤에만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특정 업체가 보유한 제품이나 장비에 맞춰 규격을 정하거나 발주 정보를 미리 제공하면 다른 업체는 사실상 경쟁에서 배제될 수 있다.

 

계약업체와 비교견적 업체가 서로 관련돼 있거나 사전에 가격을 맞췄다면 여러 장의 견적서는 공정한 경쟁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특정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수 있다.

 

계약금액을 수의계약 기준 바로 아래로 맞추는 분할 발주도 살펴야 한다. 하나의 사업을 물품 구매와 설치, 유지관리 등 여러 계약으로 나누거나 시기를 달리해 발주하면 각각은 별개의 소액 계약처럼 보일 수 있다.

 

처음에는 낮은 금액으로 계약한 뒤 설계변경과 추가 발주를 통해 전체 금액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최초 계약금액과 횟수만 확인해서는 업체가 해당 사업을 통해 실제로 확보한 전체 이익을 알기 어렵다.

 

백마진은 대금 지급 단계에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격 부풀리기와 형식적인 견적, 부실한 검수 속에서 만들어진다.

 

동일 업체에 대한 계약 횟수를 제한하는 대책도 우회 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 업체가 연간 한도에 도달하면 가족이나 직원, 지인 명의의 업체로 계약 상대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자와 사업자등록번호가 다르더라도 사무실과 전화번호, 이메일, 직원, 장비, 납품처가 겹친다면 실질적으로 같은 업체일 가능성이 있다. 비교견적을 제출한 업체들의 견적서 양식과 작성자, 연락처가 같다면 담합이나 형식적인 견적 제출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정부가 업체별 계약 횟수만 집계하면 수의계약 몰아주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업자등록번호로 분산될 수 있다. 연 5회 제한이 한 업체에 줄 수 있는 최대 계약 횟수로 굳어지고, 한도에 도달한 뒤 관련 업체로 계약을 넘기는 새로운 관행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역 내 업체가 부족한 경우 계약심의위원회를 거쳐 한도를 초과할 수 있도록 한 예외조항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지역의 현실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예외는 필요하다.

 

다만 ‘지역 업체 부족’과 ‘사업의 시급성’이라는 포괄적인 이유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면 상한제는 실효성을 잃는다. 심의 결과만 공개해서는 부족하다. 예외를 인정한 구체적인 사유와 비교 대상 업체, 예정가격 산정자료, 해당 업체를 다시 선정해야 했던 이유까지 주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계약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는 사실이 책임을 면제하는 방패가 돼서도 안 된다. 예외계약에서 가격 부풀리기나 특혜가 확인되면 누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계약을 승인했는지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백마진을 실제로 차단하려면 감시의 기준을 ‘누구의 계좌로 지급했는가’에서 ‘계약으로 누가 얼마의 이익을 얻었는가’로 바꿔야 한다.

 

같거나 유사한 물품의 지방정부별 구매가격을 비교해 특정 계약단가가 지나치게 높으면 자동으로 점검해야 한다. 수의계약 기준에 근접한 금액의 계약이 반복되거나 특정 부서가 특정 업체와 지속적으로 거래할 때도 이상 징후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최초 계약과 설계변경, 추가 발주, 하도급 내역을 하나의 사업으로 묶어 분석해야 한다. 계약 당시에는 낮았던 금액이 이후 얼마나 늘어났는지, 추가된 물량과 공정이 실제로 필요했는지, 계약업체가 확보한 이익이 합리적인 수준인지 확인해야 한다.

 

계약 결정과 납품 검수, 대금 지급 업무도 실질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한 사람이 업체 선정부터 검수와 지출까지 폭넓게 관여하면 견제 장치는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계약 담당자의 장기 근무를 줄이고 고위험 계약에 대해서는 불시 현장점검과 교차 검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내부 신고가 살아 있어야 한다. 가격을 부풀린 사실과 형식적인 비교견적, 부실 검수, 업체의 현금 인출과 접대 정황은 기관이나 업체 내부 관계자가 가장 먼저 알 가능성이 크다.

 

신고자의 신분이 노출되거나 조직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면 백마진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고자 보호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말고 독립적인 신고 창구와 인사상 불이익 금지, 실질적인 보상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원의 사적 이해관계 등록과 공개도 스스로 신고한 내용만 확인해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친인척과 측근 명의의 업체, 실질적인 소유관계, 계약 과정에서 행사한 영향력까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신고된 이해관계보다 신고하지 않은 관계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단순 횡령의 통로를 줄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를 지방계약 비리의 근본 대책으로 내세우기에는 부족하다. 전산망은 잘못 입력된 계좌를 찾아낼 수 있지만 정상적인 계약 뒤에서 오가는 현금과 현물, 접대와 제3자의 이익까지 판단하지 못한다.

 

오히려 ‘시스템상 이상 없음’이라는 결과가 계약 전체의 청렴성을 보증하는 것처럼 사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전산망을 통과했다는 것은 돈이 등록된 계좌로 지급됐다는 의미일 뿐 업체 선정과 계약가격, 검수와 사후 이익 제공까지 정당했다는 증명은 아니다.

 

수의계약 비리는 예산 몇백만 원이나 몇천만 원이 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특정 업체와 관계자가 계약을 독점하면 정직하게 경쟁하는 지역업체는 시장에서 밀려난다. 지역사회에는 실력과 가격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계약을 좌우한다는 불신이 퍼진다.

 

그 대가는 주민이 부담한다. 부풀려진 계약가격은 세금 낭비가 되고 낮아진 품질은 부실한 공사와 공공서비스로 돌아온다. 행정과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백마진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지방재정을 사유화하는 구조적인 부패다.

 

정부가 막아야 할 것은 잘못된 계좌 하나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지급된 계약대금 일부가 뒤로 흘러가는 ‘백마진의 길’이다.

 

이번 대책의 성과를 e호조+빌 이용률이나 동일 업체 계약 건수의 감소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부풀려진 계약가격을 얼마나 찾아냈는지, 차명·연관 업체를 몇 곳 적발했는지, 형식적인 비교견적과 부실 검수를 얼마나 바로잡았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공금 횡령의 출구만 막고 백마진의 뒷문을 그대로 두면 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업체 이름과 전달 방법을 바꾸며 더욱 은밀한 형태로 진화할 뿐이다.

 

주민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회계시스템에 오류가 없다는 설명이 아니다. 자신의 세금이 적정한 가격으로 집행됐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사적인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이 질문에 답할 제도와 조사 수단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번 대책은 단순 횡령 방지책에는 가까울지 몰라도 지방계약 부패를 끊어낼 근본 대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가장 위험한 비리는 잘못된 계좌가 아니라 모든 서류가 정상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