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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멸의 절벽 앞에 선 지방···정부는 봉화에서 무엇을 봤나

800년 한-베트남 교류를 3,476억 성장동력으로···봉화가 찾은 생존전략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빈집과 빈 점포가 늘고, 학생이 줄어 학교가 문을 닫는다. 병원과 상점, 대중교통 같은 생활 기반시설이 하나둘 흔들리면서 인구감소는 어느새 지역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지방정부마다 대응에 나서고 있다. 관광시설을 만들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며 청년정책과 기업유치 사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개별 사업을 늘리는 것만으로 인구감소라는 구조적인 흐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와 지역의 산업·생활 기반이 약화되는 속도가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방소멸 시대의 지역 정책은 새로운 질문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지역이 가진 자원 가운데 무엇을 성장동력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정부가 경북 봉화군을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한 것은 이 질문을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6일 제60차 지역특화발전특구위원회를 열고 ‘봉화 K-베트남 밸리특구’를 신규 지정했다.

 

지역특화발전특구는 기초지방정부가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특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에서 정한 규제특례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제도다. 2004년 도입된 이후 현재 전국 135개 시·군·구에서 171개 특구가 운영되고 있다.

 

이번 봉화 특구 지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새로운 지역개발 사업이 추가됐다는 데 있지 않다. 정부가 지역이 가진 고유한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모델을 만들고, 필요한 경우 규제를 완화해 사업의 실행력을 높이는 방식이 함께 적용됐다는 점이다.

 

봉화군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총 3,476억 원 규모의 8개 특화사업을 추진한다. K-베트남 밸리 조성을 비롯해 창평저수지 주변 관광개발, 임대형 스마트팜, 백두대간 힐링 펫빌리지 등이 포함됐다.

 

여기에 출입국관리법과 국토계획법, 주택법 등 10건의 규제특례가 적용된다. 외국인 종사자의 체류와 토지 이용, 주택 공급 등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약을 완화해 지역의 사업 추진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봉화에 내놓은 것은 재정지원만이 아니다. 지역이 가진 자원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공간을 함께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면 봉화는 무엇을 내놓았을까. 대규모 산업단지도, 수도권 기업도 아니다. 봉화군이 성장전략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지역에 이미 존재하던 역사적 자원이다.

 

고려시대 베트남 리왕조 왕자 이용상의 봉화 정착과 화산이씨 집성촌 등 800년에 걸친 한-베트남 교류의 역사를 관광과 문화, 휴양산업으로 연결하고 국제교류형 관광거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의 역사에 머물렀던 자원을 지역경제의 미래로 다시 해석한 셈이다.

 

여기에 관광개발과 스마트팜, 휴양산업 등을 결합하면서 하나의 역사문화 자원을 여러 산업으로 확장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사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역의 자원이 곧바로 지역의 경쟁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원을 산업과 일자리, 관광과 정주로 연결하는 전략이 함께 있어야 한다.

 

봉화의 경우 한-베트남 교류라는 역사적 자원을 관광으로 연결하고, 관광을 체류와 소비로 확장하면서 스마트팜과 휴양산업까지 결합해 지역경제의 구조를 넓히려 하고 있다. 특구지정은 이런 구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가 됐다.

 

지역특화발전특구 제도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모든 지역에 동일한 산업을 심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특성과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전략을 만들고, 필요한 규제를 선택적으로 완화해 지역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방소멸 대응 역시 이 같은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인구를 단순히 늘리는 정책에서 벗어나 사람이 지역에 머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에서 소비하고 머물 수 있어야 하고,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외국인 인력이 들어온다면 일자리뿐 아니라 주거와 생활환경까지 연결돼야 한다.

 

결국, 지역의 성장전략은 하나의 시설이나 하나의 사업으로 끝나기 어렵다. 관광과 산업, 일자리와 주거, 인구와 생활환경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봉화 특구가 8개 특화사업을 하나의 틀 안에 묶은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이다.

 

정부가 모든 지역의 사업을 직접 설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지역의 특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제안하고, 정부는 특구 지정과 규제특례 등을 통해 사업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구조다.

 

이는 앞으로 지방정부가 정부 정책의 방향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지역 전략을 설계하느냐가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가 지역활력과 지방소멸 대응, 체류인구 확대, 외국인 인력의 지역 정착, 지역산업 육성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한다면 지방정부 역시 자신들의 지역자원을 이 같은 정책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방정책과 정부 정책이 따로 움직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봉화의 특구지정이 곧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구지정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단계다. 앞으로 3,476억 원 규모의 투자가 실제 일자리와 기업, 관광객과 체류인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800년의 한-베트남 교류라는 역사적 자원이 단순한 관광 콘텐츠에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지역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시험대다. 결국, 특구의 성과는 지정 당시의 사업비가 아니라 사업이 끝난 뒤 지역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로 평가받게 된다.

 

이제 질문은 봉화를 넘어선다. 전국의 지방정부 역시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침체라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지역마다 조건은 다르다. 어떤 곳에는 산업이 있고, 어떤 곳에는 관광자원이 있다. 농업과 자연환경이 강점인 곳도 있고, 대학과 연구기관, 문화유산을 가진 지역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지역이 같은 해법을 선택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이 가진 자원을 찾아내고, 그것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연결해 새로운 성장모델로 만드는 것이다.

 

제천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단양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영월과 충주, 안동을 비롯한 다른 지방 도시는 어떤 자원이 있으며, 그것을 지역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정부의 특구지정은 봉화에 주어진 하나의 기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만들어낸 과정이다. 지역이 가진 자원을 찾아내고, 이를 하나의 사업전략으로 묶고, 중앙정부의 정책과 연결해 제도적 지원을 끌어낸 과정이다.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단번에 되돌릴 수 있는 하나의 해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역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일자리와 산업, 관광과 정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

 

봉화 K-베트남 밸리 특구가 던지는 질문도 결국 여기에 있다. 소멸의 절벽 앞에 선 지금, 우리 지역이 가진 자원은 무엇이며 그것을 지역의 미래로 바꿀 준비는 되어 있는가. 지방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어느 지역에 얼마를 지원하느냐만이 아닐 수 있다.

 

정부가 열어놓은 정책의 문을 어느 지역이 먼저 발견하고, 자신들의 가능성을 그 안에 담아내느냐가 앞으로 지방의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단체장과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야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