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앞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Themis)이 들고 있는 저울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기초한 사법적 판단의 원칙을 상징한다. 저울의 양쪽 접시는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비교·평가해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재판을 수행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나타낸다. 따라서 저울은 감정이나 권력, 이해관계가 아닌 사실과 법률에 근거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사법부의 책무를 상징하는 대표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행정법 역시 정의의 여신상처럼 공정과 형평성에 기초한 법 집행에 괴리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현실 사이에 불일치나 간극이 발생해 상호 일치성이 결여하면 안 될 것이다. 행정법이 제천시청사라고 해서 적용하지 못하고, 시민이라고 해서 적용하란 법은 상·하위법 어디에도 없다. 다만 지방 행정법상 공무집행 과정에서 재량권은 가질 수 있어도, 재량권 도법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나 행사되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하며 그 처분은 위법할 수 있을 게다.
충북 제천시 청사 불법건축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수년째 지적되고 있지만, 알량한 지방행정 권력으로 묵인하고 있다. 시민이 불법을 시정 하지 않고 수년째 방치했다면 공무원들이 수수방관 하고 있었겠나, 공무원들이 패거리로 몰려와 불법행위에 대해 강제집행을 했을 것이고, 불법건축물에 대해 관계 법령이 적정하게 집행되었다면, 제천시 청사와 같은 불법건축물이 현재와 같이 버젓이 존치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민은 안되고, 공무원은 되는 이런 엉터리 같은 집단 속에 13만 시민들이 오늘을 가고 있다. 법을 떠나 ‘양심’이 있으면 지나온 행적을 돌아보라, 시민들이 어떤 환경 속에 생활하고 있는지, 공무집행은 양면성이 있으면 안 된다. 공정과 형평성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할 것이다. 너는 안되고 나는 된다. 도대체 어느 나라 행정법인가. 필자가 민선 7·8·9기까지 5년여 세월 동안 50여 회 이상 전화도 했고 관계자를 찾아 가 철거 못 하는 사유도 확인해 봤으나 “하겠다”는 말만 듣고 돌아섰다.
제천시 불법 증축 부분은(사진 참조)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다고 하더라도 민원이 있었다, 수차례 언론이 보도도 했는데 이를 방치하는 것은 행정당국 불법건축물 단속 권능을 자신들이 무력화시키며 건축 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스스로 위태롭게 하고 있다. 또한, 건축법 제79조 1항 및 제80조 1항 위반이다. 건축법이 시민에게만 적용되고 공무원은 적용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시민은 시정 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종국에는 행정 대 집행까지 하면서 제천시청사라고 예외는 될 수 없다.
‘양심’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왜 언론이 시청사 불법건축물을 꼬집어서 시정을 요구하는지를, 예컨대, 내가 공무집행을 하면서 정당하게 형평성에 맞게 집행했는데 언론이 허위사실을 보도한 사실이 있던가, 내가 관급 공사를 하면서 오차 하나 없이 공사를 지시했고, 시방서 대로 공사를 했는데 언론이 허위보도한 사실이 있던가, 폐기물이 흘러가는 사실을 보고 취재 보도한 것이 잘못인가, 기자가 행정 불법이 보이는데 눈감고 웃으며 지나가야 하나.
기자를 증오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볼 줄 아는 양심을 가져라. 종군기자가 총탄을 피해 가면서 취재하는데 10명 전사자를 20명으로 부풀려 보도하면 독자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언론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사실을 전달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다. 시민의 알 권리 보장, 공론장 형성하고, 특정세력 이익보다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 전달하는 것도 언론의 사명이다.
권력 감시 부분은 언론의 업무이며, 정부, 기업, 정치인 등 권력을 가진 집단을 감시하고 문제를 밝혀 책임을 묻는다. 그러기에 언론을 제4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월권이 아니다. 현실에서 언론사마다 정치적 성향, 경제적 이해관계, 취재방식의 차이 등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시민들의 불법건축물 시정을 요구했으면 법을 떠나 자신들 불법도 시정 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자를 증오할 이유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