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림지는 제천의 심장이다.
삼한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림지는 2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청전뜰을 적셔온 생명의 물길이며, 지금도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살아있는 농업유산이다. 이러한 역사성과 희소성은 국가농업유산 지정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제천을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의 중심축으로 성장해야 할 자산이기도 하다. 민선 7기 당시 이상천 시장이 문재인 정부의 충북 공약사업인 미래첨단농업복합단지를 제천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림지와 청전뜰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경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충북에서 사업 타당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결국 의림지와 청전뜰은 보전과 활용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공간이지, 그대로 두는 것이 보전인 공간은 아니다.
의림지와 청전뜰은 제천의 미래 먹거리다.
그런데 최근 청전뜰을 가로지르는 고압 전력선 지중화 사업을 두고 적지 않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90억 원이라는 사업비를 들어 "그 돈이면 복지나 도로를 먼저 해야 한다",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꼼꼼한 검증과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의림지를 앞으로도 단순한 저수지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제천의 미래를 책임질 관광자산으로 키울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다.
관광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관광은 건물 하나를 세운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광객은 의림지 역사박물관 하나를 둘러보고 돌아가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의림지의 역사를 이해하고, 의림지 수변을 걸으며 천년의 시간을 느끼고, 청전뜰의 넓은 농경지를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체험한 뒤 자연치유단지와 생태체험 공간을 찾고, 시내에서 식사와 쇼핑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처럼 하나의 공간이 다른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비로소 체류형 관광이 완성된다. 관광은 점이 아니라 선이고, 선이 이어져야 하나의 면이 된다. 결국 의림지와 청전뜰은 제천 관광의 시작이자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지중화는 공사가 아니라 투자다.
그렇다면 그 중심축의 풍경은 어떠해야 할까. 역사박물관에서 걸어 나온 관광객의 시야를 가장 먼저 가르는 것이 거대한 고압 전신주와 송전선이라면 과연 제천이 내세우고 싶은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국의 역사문화도시와 관광지는 경쟁하듯 전선을 지중화하는 이유가 있다. 관광객은 전신주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보러 온다. 도시가 경쟁하는 시대에는 경관 역시 관광 인프라이자 경쟁력이다. 지중화는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역사와 자연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배경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190억 원은 비용인가, 미래인가.
일부에서는 190억 원이면 더 시급한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예산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논리대로라면 관광 인프라에 투자할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늘 "지금은 아니다"라는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 의림지가 앞으로 자연특구와 국가농업유산 활용사업, 치유관광, 생태관광의 중심으로 성장하려면 지금부터 기반을 갖춰야 한다. 지중화는 그 첫 단추다.
전신주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남길 것인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걱정 때문에 더 큰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선조들의 지혜다. 공사 과정의 불편과 예산 부담만을 이유로 의림지의 미래 경쟁력을 외면한다면 제천은 언제까지나 좋은 자원을 가진 도시에 머물 뿐,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머무는 관광도시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의림지는 이미 제천의 과거를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그 가치를 미래로 연결할 것인지, 아니면 전신주 아래에 그대로 머물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