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심판은 내려졌다.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제9회 지방선거는 희비를 낳았다. 승자에게는 축하를, 패자에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게 품격 있는 정치요, 정치인이다.
여·야 간, 후보별 승패를 떠나 민심은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천심은 일정불변한 게 아니다(惟命不于常)”라고 했다. 천심은 민심이고, 민심이 천심이다. 그럼 민심은 언제 변할까. ‘대학’은 거듭 강조한다. “정치가 선하고 바르면 천명을 얻고, 옳지 않으면 천명을 잃는다.”
현실성 있는 공약 제시하고 실천 마땅
올바른 정치란 어떻게 하는 것을 뜻할까. ‘논어’는 정치의 결과를 놓고, 그 평가 기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먼 데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것(近者說 遠者來)”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다섯 가지 미덕을 높이면 잘할 수 있다”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5대 지침’은 이렇다.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 일을 시키면서도 원망을 사지 않으며, 뜻을 이루려 하되 탐욕은 없고, 느긋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아야 한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공약 이행이다. 정치인은 민심을 먹고 산다. 공약은 민심 얻기의 도구다. 정당과 당선자들은 미래지향적이며 현실성 있는 공약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공약 실천은 국민 신뢰를 얻는 길이다.
중국대륙 통일제국의 초석을 다졌다는 진(秦)나라 시황제의 선대 왕 효공 때다. 재상 상앙이 백성의 신뢰를 얻기 위해 사용한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는 오늘에도 가르침을 준다. 그는 세 길 정도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세우고 백성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 놓는 자에게는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상히 여겨 그 누구도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오십 금을 주겠다고 했다. 누군가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그에게 돈을 주었다. 백성들은 그 뒤로는 상앙이 공표한 법을 믿게 됐다. 백성의 신뢰에 기반해 100여 년 뒤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이 가능케 한 인프라를 깐 셈이다.
우리 현실로 되돌아오자. 선거가 끝난 지금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가 유권자가 원했던 의제를 중심으로 치러졌는가 하는 점이다. 기후·생태 위기와 인구구조 변화, 디지털 전환과 산업구조 재편은 지방의 일상과 경제 구조를 빠르게 흔들고 있다. 특히 지방은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재정 압박이라는 복합 위기를 가장 먼저 겪고 있다. 그래서 이제 지방정부는 지역의 생존 전략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공약 다이어트'가 필수적이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은 예산 확보의 한계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정책들은 재검토해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공약은 대부분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지만, 실제 확보 가능한 지방재정은 한정돼 있다. 예컨대 대형 병원 유치나 무리한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같은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괜히 '희망 고문'이 될 우려가 크다.
당선자, 현실성 없는 공약은 과감히 수정
반도체 산업만 하더라도 막대한 전력과 용수, 고급 인력, 연구개발 역량, 공급망 체계가 동시에 필요하다. 최근 중동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에너지 가격 급등, 보호무역 강화 흐름은 첨단산업 전략이 단순한 지역 의지만으로 추진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지역의 숙원 차원만으로 유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주민들의 체감도가 높은 생활밀착형 사업 위주로 추려내는 작업이 요구된다.
모든 공약을 한 번에 추진하려고 하면 부채 증가나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다. 시급성과 예산 조달 가능성을 기준으로 단기·중기·장기 과제로 나누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약은 과감히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다이어트'가 행정 안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독단적인 진행보다는 주민 배심원단이나 공청회 등을 거쳐 투명하게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게 주민 반발을 줄일 수 있다. 유권자들 역시 선거가 끝난 지금 선출직 공직자가 무리한 공약을 수정하는 것을 합리적인 행정으로 여기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지방정치는 무엇을 더 크게 개발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시민의 삶을 지키는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중심에 둬야 한다.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