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한국 축구 행정을 이끌어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결국 물러난다. 하지만 축구계의 관심은 단순한 ‘사퇴’보다 ‘왜 지금이냐’에 쏠리고 있다. 4선 연임에 성공하며 오는 2029년까지 임기가 보장됐던 정 회장이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퇴진 의사를 밝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 회장은 공식 성명을 통해 “대표팀 지원을 마지막 소임으로 생각한다”며 월드컵 이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그동안 이어진 각종 논란에 대해 “모두 제 부덕의 소치”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축구계 안팎에서는 이번 결정을 단순한 ‘명예로운 퇴진’으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오랜 기간 누적된 팬들의 불신과 문체부 감사 압박, 반복된 행정 논란 속에서 사실상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85%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4선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만 해도 ‘정몽규 체제’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실패를 시작으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 논란, 승부조작 연루 축구인 사면 시도 등 굵직한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축구협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협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결정적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절차적 공정성 논란과 함께 “결국 내부 인맥 중심의 행정 아니냐”는 비판까지 이어지면서 축구협회 운영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과거에는 대표팀 성적이 논란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성적조차 팬들의 실망감을 덮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 대표팀 A매치 흥행 분위기도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매진이 당연시됐던 대표팀 경기 관중석이 눈에 띄게 비기 시작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대표팀보다 협회 이슈가 더 피곤하다”는 반응까지 등장했다. 축구 자체보다 행정 논란이 더 큰 화제가 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문체부와의 갈등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대한축구협회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 이후 정 회장을 포함한 협회 관계자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고, 관련 법적 대응 과정에서도 협회 측이 불리한 흐름에 놓이며 리더십은 크게 흔들렸다.
협회 내부에서도 “월드컵 이후 더 큰 후폭풍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 회장이 선택한 카드는 ‘월드컵 이후 퇴진’이라는 절충안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월드컵 직전 즉각 사퇴할 경우 대표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반대로 임기 말까지 버틸 경우 여론의 반발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담과 축구계 후폭풍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시점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정몽규 체제를 무조건 실패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U-20 월드컵 준우승, 천안 축구종합센터 추진 등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퇴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결국 ‘성과’보다 ‘신뢰’에 맞춰져 있다. 결과가 일부 좋았더라도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팬들은 등을 돌린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는 평가다.
결국, 정몽규 회장의 퇴진은 단순한 한 인물의 사퇴를 넘어 한국 축구 행정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탄에 가깝다.
이제 축구팬들의 관심은 ‘포스트 정몽규 체제’로 향하고 있다. 차기 회장이 누가 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가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느냐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더 이상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행정, 그리고 책임지는 리더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