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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의 正論칼럼] 묵인은 또 다른 방조와 다르지 않다

 

각주구검(刻舟求劍), 배의 밖으로 칼을 떨어뜨린 사람이 나중에 그 칼을 찾기 위해 배가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칼을 떨어뜨린 뱃전에다 표시했다는 뜻에서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것만 고집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태양이 지고 나면 달과 별이 만물을 비추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역 정치인의 꼼수는 유치할 정도로 속이 훤히 보이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젊고 혁신적 인물은 오간 데 없고 구태의연한 후보들만 선거판을 기웃거린다.

 

흘러간 물로 수레바퀴를 돌릴 수 없듯이 재탕 삼탕 하려는 지역 정치꾼 속에 시민 경제 회생은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다. 이들은 넘어서 안 될 ‘양심’의 계선을 넘어 버렸다. 창피함도, 부끄러움도 전혀 모른다. 시민이야 도탄에 빠지든 말든 권력의 달콤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환위법(換位法)이란,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꾸어서 새로운 판단을 이끌 어 내는 방법을 말하는데, 예컨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봄으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대로 상대에게 새로운 생각을 끌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지난 5월 2일 이충형 전 국민의힘 대변인이 제천시장 후보경선에 불복해 지역 국회의원을 중앙당 윤리위에 제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의원 입장으로 볼 때 사실 창피스러운 사건으로 지역 정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장면으로 치부한다.

 

이 전 대변인의 한 맺힌 절규가 표출된 과정이고, 경선과정의 문제점이 결국 중앙당을 향했다고 볼 수 있다. 중앙당에서도 책임 있는 결단이 뒤따라야 할 시점이며 결국 답은 명확하다.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길이 아닌가.

 

이 전 대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충분히 해량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사 근무 30년 이상 해온 언론인 출신이 상황판단이 부족해 개인감정이 개입됐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 전 대변인은 선거법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아까운 인재가 얄궂은 지역 정치 놀음에 희생되는 과정을 주지하면서 아직 젊었으니 어디를 가도 얼마든지 제2의 인생 장을 활짝 열 기회가 올 것이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자만이 극복할 수 있을 것이고 물구나 무 서기를 해서라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정치반열에 올랐다 낙마한 숱한 정치인을 보라! 예수의 최후 만찬이 아닌 정치적 최후 만찬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 살 때 시를 지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다섯 살 때 세종에게 불려가 장차 크게 쓰겠다는 약속을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

 

김시습,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관리가 되어 조정에서 그 재능을 펼치려는 뜻을 가지고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과거 공부에 정진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후 새로운 조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읽던 책을 불사르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게 되는데, 김시습이 경주 금오산 자락에 잠시 머물며 지은 작품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 이다. 이외 수많은 한시와 논설들을 남겼다. 필자가 왜 김시습을 짧게 소개했는지 숙고해 보기 바란다.

 

법과 원칙은 선택이 아니라 기준이다. 이 전 대변인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지역단체장 선거에 다수의 후보난립도 문제려니와 선출과정 역시 침묵할 수 없는 사안들이 노출되니 문제다. ‘묵인은 또 다른 방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